『우리는 아직 거리에』는 1975년 3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서 자유언론실천투쟁으로 강제 해직됐던 언론인 20명의 회고록이다. 이부영(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 전 열린우리당 의장), 신홍범(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 전 두레출판사 대표), 정연주(동아투위 위원, 전 KBS 사장), 이종대(동아투위 위원, 전 대우자동차 회장), 김언호(동아투위 위원, 한길사 대표) 등 스무 분이 필자로 참여했다.
1970년대 초반 박정희 군사 독재정권은 종신집권을 획책하며 유신헌법을 통과시키고 사회 전반에 걸쳐 폭압적 통치를 강화해나갔다. 언론의 경우 정보기관원이 신문사에 상주하며 보도할 수 있는 기사와 보도할 수 없는 기사를 일일이 간섭했다. 말할 수 있는 자유와 써야 할 자유를 강탈당한 언론인들은 유신정권의 폭압적 언론통제에 언론자유수호 선언을 수차례 하며 저항했다.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 언론인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은 언론인들의 투쟁이 정점에 이른 사건으로 이후 전국의 31개 언론사가 같은 내용의 선언을 하며 동참했다.
1974년 10월 자유언론실천선언 이후 한국의 언론은 부분적 자유언론을 구가하며 학생 시위나 종교단체 기도회 등 민주화 관련 기사가 보도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위기를 느낀 유신정권은 광고주를 압박해 1974년 12월 말부터 동아일보에 광고를 실지 못하게 함으로써 동아일보는 광고지면을 백지로 발행하기에 이른다(백지광고 사태). 이에 저항하며 수많은 시민들이 격려광고로 동아일보를 응원하며 맞섰으나 정권의 압력에 굴복한 동아일보 사주는 1975년 3월 자유언론실천에 나섰던 113명의 기자 PD 아나운서를 해고하고 말았다. 조선일보 또한 같은 시기 편집권 독립 투쟁에 나섰던 기자 32명을 해고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서 강제 축출당한 언론인들은 곧바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와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조선투위)를 결성하고 언론사 밖에서 한국의 민주주의와 언론개혁에 매진했다. 그들은 정권의 취업 방해(블랙리스트)로 생활고에 시달리고, 경찰과 중앙정보부의 감시와 체포 구속 징역 등으로 수난이 끊이지 않았다. 강제해직 후 6개월 간 지속한 출근투쟁, 2명의 동료와 10명의 동료가 구속됐던 청우회 사건과 민주인권일지 사건, 1980년 지식인선언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다수의 위원이 남영동에서 고초를 겪은 일 등 1970~80년대 그들의 삶은 독재정권과의 투쟁 그 자체였다.
그런 속에서도 동아투위와 조선투위 언론인들은 민주언론운동협의회 결성과 말지 발간, 한겨레신문의 창간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를 위한 주도적인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출판계로 진출한 동아투위 위원들은 책을 통해 한국사회의 지적 자양분을 제공했고, 민주화운동으로 나선 동료들은 1987년 민주대항쟁의 주역들로 활약했다.
『우리는 아직 거리에』는 그들의 50년 기록이다. 1974년 10월 자유언론실천선언에 이르기까지 수차례의 언론자유수호 선언과 노조 결성 이야기가 있고, 1975년 3월 신문사에서 폭도들에게 쫓겨난 후 쉼 없이 전개한 자유언론을 향한 간단없는 투쟁이 있으며, 1980년 6월 신군부로부터 겪은 간난신고의 삶이 있다. 강제 해직 후 유신정권의 감시로 취직이 어려워 옷 가게와 꽃 가게를 연 분, 과일행상을 한 분의 사연도 있다. 기자 PD가 천직인 그들이 어찌 그 일들을 감당할 수 있었겠는가.
그런 속에서도 이 분들의 삶 또한 애환이 있어 밀착 감시하는 형사의 도움으로 난제를 해결하기도 하고, 어렵게 취직해 첫 출근한 날 밀린 자장면 값 청구서를 들고 찾아온 중국집 사장 이야기며, 시골 형사들의 과잉 감시로 서울에서 진천까지 모셔지는 이야기도 있다. 그 험한 시절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군데군데 슬그머니 웃음이 나오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회고록이면서 한국의 언론사이기도 하고 1970~80년대 생활사이기도 한 것이다.
2024년 10월 자유언론실천선언 50주년!
2025년 3월 동아자유언론수후투쟁위원회 결성 50주년!
2025년 3월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결성 50주년!
반세기 한길 한국의 민주주의와 언론 민주화에 헌신한 동아투위 조선투위 선배들에게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