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도 배웅도 없이』는 조용히 다가와 오래 머무는 언어들로 채워져 있다. 관계의 거리감,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고, 말하지 못한 감정들의 잔여를 섬세하게 떠올린다. 이전의 시집들이 상실과 그리움, 그 곁의 사랑에 대해 온건하고 단정한 언어로 이야기해왔다면 이번 시집은 그 감정의 결을 더욱 구체적이고 서사적인 장면들로 드러낸다. 장면들 속의 마음은 느슨한 문장들로 묶인 채 더욱 깊이 고여 있다. 문장 사이의 공백과 쉼, 비워진 자리를 응시하는 일은 지나간 마음의 흔적을 수집하고 기록하는 한 사람의 일기처럼 읽힌다.
이번 시집은 단지 감정을 전하는 ‘문장’이 아니라, 정직하게 한 시절을 건너온 사람만이 쓸 수 있는 ‘태도’로까지 확장된다. 삶의 표면을 넘지 않으면서도, 가장 깊은 데까지 가닿는 언어의 온도. 박준은 이제 ‘말을 고르는 시’에서 ‘말이 지나간 자리를 들여다보는 시’로 옮겨 왔다. 그리하여 이 언어들은 감정이 머물렀던 자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마중도 배웅도 없이』는 누군가를 기다리다 끝내 보내지 못한 사람, 보내고도 여전히 기다리는 사람, 그 모두를 위한 시집이다. 이 시집은 독자의 슬픔을 위로하려 들지 않는다.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 함께 앉아 조용히 등을 내어주는 시집이다. 박준은 언제나 덜 말하는 방식으로 더 많은 울림을 전해왔다. 우리가 읽어내야 할 것은 말하지 않은, 그러나 너무나 많은 말들로 넘실거리는 그 모든 여백일 것이다.
이제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