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한 번은 릴케를 읽어야 할 때가 온다.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라는 시인의 명령이 벼락처럼 가슴을 때리는 순간이 온다. _ 김이경(『시 읽는 법』 저자)
20세기 가장 순수한 시적 정신의 소유자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읽는 첫걸음
유유의 ‘세계문학공부’는 각 나라 대표 작가들을 꼼꼼히 들여다보며 작품의 배경과 작가의 기질, 시대와 삶을 하나로 꿰는 총체적인 시선을 보여 주는 교양 공부 시리즈입니다. 하루키, 헤밍웨이, 마르케스, 카뮈에 이어 마지막 다섯 번째 작가를 소개합니다. 바로 라이너 마리아 릴케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이름은 익숙한 듯 낯섭니다. 그는 뛰어난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릴케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젊은 시인 지망생과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서간집,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이지요. 그전에,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에서 릴케의 이름을 접한 데 그친 독자도 많을 것입니다. 릴케가 어떤 작품을 썼고, 어떤 작품 세계를 구축했는지, 시인으로서 얼마나 빛나는 성취를 이룩했는지 아는 독자는 별로 없습니다.
그럼에도 오늘의 젊은 작가들이 여전히 릴케를 호명하고 그의 작품을 다시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윤동주 시인이 별을 헤며 릴케의 이름을 떠올리고, 백석 시인이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이들의 얼굴을 생각하며 릴케의 이름을 떠올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 사이에서』는 시를 깊이 사랑하고 시 쓰는 일에 오래 천착한 ‘20세기 가장 순수한 시적 정신의 소유자’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작품을 꼼꼼히 읽고 그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도록 돕습니다. 작고한 지 백 년이 다 된 시인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를 소상히 설명하고 있지요.
삶과 죽음, 인간과 신,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시인이 할 수 있는 일
양자오 선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결국, 만약 모든 것을 알 수 있고 명확하게 말할 수 있다면 삶에 시는 필요치 않을 것이다. 시는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 사이를 오가며 존재한다.” 이 이야기는 릴케의 작품 세계를 꿰는 핵심이기도 합니다. 릴케는 존재하지 않는 것, 알 수 없는 것을 언어화하려 부단히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고대 아폴로의 토르소」와 「벗을 위한 레퀴엠」에서 보여 주었듯 죽음과 신이 그의 오랜 화두인 것도, 경험하지 않은 기억을 회상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부재’absence를 언어화하려는 시도 역시 릴케의 작품에서 혹은 삶의 곳곳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가령 릴케는 모국어인 독일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시를 쓰려 시도했지요. 모국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단어를 정확히 표현하고 설명하려고요.
양자오 선생은 릴케가 골몰한 주제를 짚어 내며 작품을 읽는 독자의 시야를 거침없이 확장시킵니다. 선생은 릴케가 작품을 통해 명확한 것과 모호한 것 사이를 서슴지 않고 오가며, 탐구하고 질문한다고 합니다. 죽음 앞에서는 “죽은 자는, 죽은 걸 아쉬워할까?”, 시를 쓰고 싶어 하는 이 앞에서는 “당신은 시를 쓰지 않으면 죽나요?”라고 말이지요. 릴케라는 시인이 마냥 크고 멀게만 느껴진다면, 릴케의 작품이 그저 길고 난해하게만 느껴진다면 이 책이 분명 도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