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알려진 진실 중 하나는 이야기를 발생시키는 큰 힘이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인물에 대해, 이웃과 타인에
대해 진심을 다해 보고 듣고 생각하고 상상해야 한다.
어쩌면 쓰는 일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는 일을.
고수경의 등단작 제목은 의미심장하게도 〈옆사람〉이며 그럴 기회를
갖지 못한 젊은 부부의 이야기이다. 그 단편을 시작으로 이 소설집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이 이웃들, 타인을 보는 우리의 방식을 검토하게 하고
가족과 옆 사람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 조용한 기척이 소설의 또 다른
진실이고 작가의 일, 소설의 가치라는 것을 깊이 알고 쓰는 젊은 작가가
여기에 나타났다. 이것이 겨우 첫 번째 소설집인 데도 그렇다.
- 조경란(소설가)
『옆사람』은 실은 마음 이야기
고수경의 소설에는 유독 읽는 이의 마음이 잘 비친다. 얼핏 담백해 보이는 작품들에는 틀림없이 의도하고 지워 낸 듯 분명한 여백이 있어서, 그 꽉 찬 빈자리를 헤아리다 보면 뒤늦게 강렬한 이야기였구나, 깨닫게 되곤 했다. 그러니까 뼈대는 몹시 분명한데 이를 감싼 살결은 투명해서 독자의 내면과 쉽게 공명할 수 있는 이야기다. 당신이라면 어떨까? 남편의 지갑 분실로, 단 한 번도 〈우리〉였던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내의 이야기 「옆사람」, 방문의 열쇠를 발견하고 마침내 그 방에 들어가 편히 몸을 누이는 부부의 이야기 「다른 방」, 넣을 것이 마땅치 않아 처박아 두었던 커다란 가방에 드디어 넣을 만한 무언가가 생긴 부부의 이야기 「아직 새를 몰라서」 등 사이가 저마다 다른 부부의 이야기에 자신을 비추어 보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혹은 안전하게 머물 공간을 찾아 집과 모텔과 동아리방을 오가는 소년을 뒤쫓는 교사의 이야기 「새싹 보호법」, 학생의 집을 〈교실〉로 부르며 아파트 속 무수한 교실들과 차 안을 오가는 학습지 교사의 이야기 「좋은 교실」, 억지로 지은 미소와 마스크로 감춰진 표정 사이에 과연 차이가 있는 걸까 묻게 만드는 한 감정 노동자의 이야기 「탈」에 자기 모습을 투영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 되었든, 고수경의 첫 소설집을 읽고 나면, 당신이 사는 방, 가지고 다니는 가방 같은 것들이 더는 심상하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를 읽은 후 다시 나 자신에게로 돌아와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그리하여 내 마음을 외면하지 않은 채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해석하는 일. 이것이 바로 소설이 우리에게 열어 주는 가능성 중 하나가 아닐까. 고수경이 써낸 말간 이야기들과 함께 자신의 삶을 충만하게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ㅡ 문학 평론가 황예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