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 나의 글쓰기
신부님은 왜 그렇게 신자들을 불편하게 하는 글을 쓰세요?
자주 듣는 이야기이다. 사람 마음 공부 하기 전에는 나도 신자들 입맛에 맞추는 강론을 하였다. 감미로운 프란치스꼬 성인의 아름다운 마음과 같은 이야기들을 주로. 그러면서 영적 귀족이 되어갔다. 어둡고 비참한 현실은 쳐다보지도 않고 허공 중에 떠서 영적 허풍을 떨며 살았다. 기도발이 쎈 양, 내가 뭐라도 되는 양.
그러다가 집단상담 시간에 무참히 깨졌다. 내가 못 본 나의 실체에 대한 혹독한 비판들. 나락으로 굴러떨어진 느낌. 그 바닥에서 사람 마음의 실체와 현실을 보았다. 그리고 영적인 사기가 무엇인지도, 내가 그동안 저질러 온 사기 행각도.
그 후 발을 땅에 딛는 영성의 길을 걸어왔다. 산을 한 걸음씩 오르듯이. 근데 뜬구름 잡는 영성에 중독된 이들이 난리들 한다. 그런 식으로 어떻게 정상까지 갈 수 있냐고. 난 안 간다고 했다. 이렇게 걷는 것만도 좋다고. 나를 싫어하는 것들은 거의 다 영적 허풍쟁이들이거나 경건 콤플렉스자들이거나 가벼운 영적 사기꾼들이다. 또 난리가 날라나.
어쨌든 난 내 길을 간다. 알아주건 말건. 그런데 주교님들께서 불러 주신다. 사제들에게 강의해 달라고. 그래서 수원, 의정부, 부산, 대구, 춘천에서 강의했다. 인천은 몸이 안 좋아서 못 갔고, 올해는 마산교구에 초대받았다. 주교님들과 많은 사제들이 내 이야기에 공감해주는데 아직도 시비 거는 이들은 누구인지 궁금하다.
나는 오늘도 길을 만들며 간다.
옆에서 왜 길이 없는 데로 가냐고 하건 말건.
내게 글쓰기는 전쟁이다.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문학적 목적이 아닌 사람들의 마음 안에 또아리 틀고 사람들을 지옥으로 몰아가는 악한 말들을 쫓아내기 위한 글들이다. 그래서 거칠고 호전적이다. 마치 마귀를 쫓아내려고 하는 구마사제처럼. 나 역시 그런 마음가짐으로 글을 쓴다. 그래서 글 쓰고 난 자리는 전장터처럼 너저분하다. 널부러진 종이 조각들을 쓸어 담으면서 내 글이 병든 신념의 노예로 사는 사람들에게 탈출의 힘이 되길 기도한다.
그런데 작업을 하면서 종교인들이 신자들 마음 안에 뿌린 병적인 말들이 얼마나 지독하고 고약한지를 새삼 느낀다. 종교인을 하느님의 대리자로 보는 신자들일수록 증세가 더 심하다. 그래서 종교인들은 정기적으로 자기 멘탈을 점검해야 한다.
상담가로 일하면서 얻게 된 것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사람 안의 아이가 느껴집니다. 때로 영상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동네 골목에서 놀던 아이들의 모습, 맞지 않는 큰 어른의 옷을 입은 눈에 눈물자욱 선명한 아이들이 보입니다. 그래서 상담 후에는 한동안 마음이 짠합니다.
이제 상담가로 일한 지 이십 년이 넘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나무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가지 형태의 나무, 자라지 못한 나무, 벼락에 맞아 타버린 나무, 돌에 짓눌린 나무, 키는 큰데 나뭇잎이 없이 헐벗은 나무.
아무리 옷으로 직위로 가리려고 해도 가릴 수 없는 것이 자기 실체이지요. 상담을 공부하면서 인생이란 내 안의 나무를 키우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점점 더 확신이 듭니다.
내가 나에게 묻습니다. 넌 어떤 나무니? 젊은 시절에는 돌에 짓눌리고 땅이 딱딱해서 뿌리도 가지도 약해빠진 나무만 보였습니다. 열등감 무기력감에 짓눌린. 그런데 상담을 통해서 나를 보게 된 후 돌을 깨어 가지를 뻗고 땅을 뚫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외부의 병적인 신념들, 내 안의 병적인 신념들을 깨고 부수고 자존감 자신감을 키우기 위해 나름 필사적인 노력을 했습니다. 핀잔도, 조롱도, 의심도, 비난도, 시기 질투까지 엄청 많이 받았습니다. 짓눌려서 크지 못한 채 있을 때는 개무시 하던 사람들이 나무가 자라자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라고 폭언을 합니다.
그런데 돌을 깨고 땅을 뚫으면서 자유로운 정신적 쾌감을 맛보고 나니 ‘니들은 닭장 안에서 그렇게 살아라. 난 창공을 날아 갈란다’ 하는 마음이 들더군요.
이제는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작은 그늘, 작은 쉼터, 작은 등대 역할이라도 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만족합니다. 내가 좋아하고 나름 잘하고 인정도 받고 있으니 더 바랄 게 없지요. 앞으로 할 일은 더 푸르고 더 뿌리 깊은 나무가 되기 위해 더 깊은 공부를 하는 것만 남았습니다.
긴 세월을 끌어주신 주님
방황하는 둘째 아들 같았던
저를
끝까지 믿어주신
성모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