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새로 읽는 가장 참신한 방법
『다 말하게 하라: 유교조선 지성사론』은 부제에서도 밝히듯 조선의 실체, 그리고 유교조선을 대표하는 이기론의 실체를 정치와 경제의 흐름과 연결하여 풀어낸다. 우선 ‘지성사’적 방법론, 즉 정치 경제 상황에 결부된 집단적 지성과 정신의 흐름으로서 조선을 설명한 최초의 시도라는 점이 매우 눈에 띈다. 과전법, 정전제, 이기론, 속오군처럼 교과서에서 단편적으로 암기한 조선의 제도나 논쟁의 맥락을 당대의 시각에서 읽어 내는 저자의 탁월함으로, 이 책은 역사 철학서로서, 우리에게 근대화론이라는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조선사를 해석하는 다른 (그리고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한다. ‘아는 게 많아도 너무 많은’ 김인환, 생전에 황현산이 ‘내가 아는 것의 반은 그에게 배웠다!’고 평한 김인환은 국문학자, 현대 문학 평론가, 한시의 번역가, 문학사학자에서 나아가 이 책에서 조선 사상의 역사를 가장 참신하고 대안적 방법으로 접근한다.
김인환은 문체와 논리를 동시에 지닌 드문 평론가일 것이다. 수류산방에서는 2년 동안 이 책을 정성스럽게 편집했다. 저자 특유의 지조 있는 문체에 독자들이 다가설 수 있도록, 단락마다 소제목을 달았다. 인물과 사실 관계 등을 실록 사료와 대조하고 시각 자료와 해석을 더했다. 저자와 여러 차례 확인을 거치며 오류를 최소화하고자 했다. 6단계 시대상을 다루는 장들과 지성사의 흐름을 논한 장들을 서로 다른 책인 듯 나누어 디자인했다. 즉 내용에 상응해 형식도 바뀌는 조판으로 인문학 독서에 새로움을 더했다. 유교조선을 해부하는 저자의 체계를 도해한 그래픽으로 조형의 일관성을 구현했다. 책의 첫머리에는 이 책의 편집 과정을 설명한 [김인환 지성사론]을 수록했다. 그 제목 ‘완강히 달램’은 저자의 글 “투사는 완강하게 달랠 줄 아는 사람이다.”(『과학과 문학』, 2018.)에서 따 왔다. 유교조선의 지성사를 다룬 이 책의 구절과 김인환의 과거 저작들의 구절들을 교차해 발췌했는데, 김인환의 저술 방법론 중 하나로, 동일한 구절을 여러 저작에서 반복하면서 글 너머의 지평을 암시해 오곤 했다. 그 구절들이 지시하는 세계를 계엄 이후 대한민국의 풍경과 함께 엮었다. 김인환이라는 공부 스승을 사사하는 태도로 엮은 수류산방의 만듦새가 새로운 독자들에게 김인환 학문의 현재성과 미래성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기 바란다.
다성 정치의 창조적 미래로
“문학의 형식사와 문학의 사회사를 융합해” 내고자 평생 경주해 온 저자 김인환은 『다 말하게 하라: 유교조선 지성사론』에서 쿠데타를 합리화하기 위해 망한 명나라에 대한 사대를 자처하는 유학자 송시열의 모순을, 나라를 팔지언정 백성의 평등주의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조선 말 왕실과 (소위) 개화파의 민낯을 감정적 평가를 배제한 채 사료로서 준열하게 적시한다. 그러나 저자가 이 책을 저술한 이유가 조선의 사대주의와 전근대성을 통박하기 위함은 아니다. “한글과 동학을 만든 것만으로도 한국의 전근대는 제 할 일을 충실하게 완수했다고 할 수 있다.”고 쓴 바 있듯, 이번 책 『다 말하게 하라』 또한 세종에서 시작해 수운에서 정점을 찍는다. 세종과 연암과 수운은 정통 유학자는 아니었지만 유학의 사유 체계를 바탕으로 위대한 평등성과 고유성, 창조성을 펼쳐 보였고, 그것이 이 책의 제목을 『다 말하게 하라』로 정한 까닭이다. 유교조선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무엇인가. 2025년을 내란 정국에서 시작하게 한 계엄의 뿌리도 조선에 있지만, 그 계엄을 해제한 위대한 야광봉의 뿌리도 조선에 있다. 한글은 우리에게 다 말할 수단이 되었고 동학은 다 말할 자격을 부여한다. 이 책으로서 우리는 비로소 근대라는 잣대를 벗어나 유교조선의 이야기를 듣고(읽고) 갈피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김인환 사유 4부작의 마지막 퍼즐, 『다 말하게 하라』은 계엄 이후, 우리가 가야 할 ‘다른 미래’의 창의적 방향성을 온화하고도 묵직하게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