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세요, 오한기 씨!
답답하게 도덕책 같은 소리 늘어놓고 있네.
무료 주차는 우리 권리라고요!”
표제작인 「무료 주차장 찾기」에서 편집자의 제안을 받고 육아 에세이를 쓰기로 결심한 소설가 ‘나’는 작가 생활 십 년 만에 경쟁력이 하나 생겼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실제로 아이를 키운다는 것”. 그런데 육아를 시작한 뒤로 동선은 집 유치원 놀이터가 전부고, 인간관계도 일곱 살 딸 주동과 나 자신(와이프 ‘진진’은 주말부부로 지내는 중이다)뿐이라서 녹록지가 않다. 그런 ‘나’에게 때마침 에세이로 쓸 만한 “이슈”가 생겼으니 바로 주동의 유치원 버스기사가 ‘무료 주차장을 찾으러 간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버스와 함께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주동을 직접 등하원시키느라 글을 쓰지 못하는 ‘나’에게 또 하나의 이슈가 생기는데, 부업으로 하는 온라인 마케팅의 급여를 떼일 위기에 처했다는 것. 게다가 주동의 유치원 친구 동주의 보호자이자 아파트 주민인 조나는 무료 주차 보장 정책 실현을 위해 유치원 버스를 직접 찾아 나서자며 ‘나’를 부추긴다. 에세이로 쓸 만한 이슈들이 휘몰아치는 형국인데 오히려 그 때문에 쓸 수 없다는, “인생을 형상화한 듯한 악순환”의 아이러니. 쓸 거리가 없어서 못 쓰고 쓸 거리가 생겨도 못 쓰는 ’나‘는 이제 조나가 설파한 ‘우리의 권리’, 즉 무료 주차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조나2’가 되어 행동 개시에 나선다.
난이도 최상, N잡러 소설가 ‘오한기’의
극한 반품 알바!
오세아니아발 도마뱀들과의 생존전쟁
이번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의 한 축은 ‘육아’이기도 하지만 ‘직업’이기도 하다. 「숲 체험」에서 ‘나’의 직업은 “소설가, 드라마 작가, 아빠(?) 음식 배달, 블로거, 무인문구점 매니저”로 늘어난다. 그런데 ‘나’의 머릿속을 온통 차지하는 건 ‘무료 주차’라는 사실. 「무료 주차장 찾기」에서 ‘에세이 이슈’가 추가되었다면, 이번에는 ‘비극’이 계속 추가되는데 올림픽공원 주차장이 늘 포화 상태이고 요금이 비싸다는 것과 그럼에도 주동이 울다가도 뚝 그칠 만큼 올림픽공원 숲 체험을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것, 그리하여 매주 “비극을 강제 체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 직업만큼 한없이 늘어가는 건 돌봐야 하는 아이들이다. 진진의 직장 동료인 장 과장이 창업한 무인문구점 매니저 일을 하면서 시작된 또 하나의 ‘비극’으로, ‘나’는 아이들에 대한 ‘돌봄 노동’이 강도를 더해갈수록 더 “전투적”으로 소설을 쓰게 된다. “소설이 운명이라고 여겨질 만큼” “행복과 만족감”을 느끼며.
「반품 알바」는 도마뱀 구매대행 반품 알바를 시작한 소설가 ‘나’의 이야기다. 반려 도마뱀 해외 구매대행을 하는 영화 동아리 선배의 일을 도와 반품된 도마뱀을 회수한다는 이 단순한 일에도 하나의 조건이 있었는데 도마뱀을 되팔든 보관하든 알아서 처리해야 한다는 것. 와이프 진진은 생명체를 사고판다는 것이 주동이 보기 부끄럽지 않겠냐며 만류하지만, 가계경제의 핵심 축이자 믿을 구석이었던 진진이 직장에서 정리해고를 당하고 아빠가 네 번째 암 수술을 받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도마뱀 반품 알바가 비루한 인생을 반품할 역전의 기회가 될 수 있을까?
“다소 어지럽게 보이더라도
결국엔 하나의 선을 그리게 될 거라는 믿음”
몽상가에서 리얼리스트가 된 문학제일주의자
이번 연작소설집에서 오한기는 그동안 다른 소설들에서 보여온 ‘~되기’에 대한 가능성을 가장 현실적인 욕망의 실천으로 보여주는데 바로 ‘무료 주차’를 갈망하는 것이다. 『의인법』에서 ‘인간 이하의 존재’가 ‘인간인 척’하거나 『가정법』에서 ‘스스로 원하는 존재’가 되려 한 오한기는 “문학제일주의자가 몽상가에서 리얼리스트가 돼가는” 요즘 그의 소설의 경향(「숲 체험」)대로 무료 주차장을 찾아야 한다는 실질적인 문제에 당면한 자가 곧 작중 ‘오한기’가 되는 등치법을 구사하고 있다.
그러나 ‘무료 주차’가 상징하는 “행복과 안정, 아름다움”(「반품 알바」)은 잠시 환각처럼 찾아온 가치들로, 자본주의에 무난히 편입하려는 ‘욕망’이 아니며, ‘쓰는 자아’를 유지 또는 회복하려는 ‘욕구’에 가깝다. 수익과 가성비, 효율성에 안착하고자 애쓸수록 “새로운 노예주로 거듭”날 뿐 불균형하게 작동하는 사회 시스템의 근본 대책이 될 수 없으며, 이는 작가이자 아빠인 ‘오한기’에게도 마찬가지다. 「숲 체험」에서 정규직을 바라는 듯하지만, 부업이 직업이 되었을 때 되레 그에 반하고자 소설 쓰기에 몰두했던 것처럼. 『무료 주차장 찾기』가 육아와 직업, 먹고사는 일의 생계에 대한 ‘백서’이면서 쓰고 또 쓰겠다는 선언이 새겨진 ‘백서’로도 읽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