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오의 ‘새라면’
치오는 어릴 적 사고의 기억으로 혼자서는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하는 어린이입니다. 그래서 학교를 마치는 시간에 맞춰 아빠가 데리러 와야 집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하필 아빠가 늦었어요. 친구인 백호가 우두커니 서있는 치오에게 ‘김치오 바보’라고 놀리며 횡단보도를 건너가 버려도 뒤따라가서 따지지도 못합니다. 치오는 그런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어요. “새처럼 날면 횡단보도 같은 건 휙 건너갈 수 있을 텐데.” 치오는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어요. 그러다 문득 맛있는 라면 냄새에 이끌려 새로 생긴 라면 가게로 쏙 들어갔어요.
“우리 집은 너라면만 있어요, 손님.”
주인아저씨가 다정하게 말했습니다.
너라면? 짜장라면, 짬뽕라면, 우동라면, 비빔라면 같은 라면 이름들이 생각났습니다.
‘너라면은 처음 듣는데.’
치오가 속으로 생각한 걸 읽기라도 한 듯 주인아저씨가 멋쩍게 웃으며 속삭이듯 말했어요.
“너라면 무슨 라면을 먹고 싶나요? 라는 뜻이에요.”
주인아저씨가 웅얼웅얼 말하는 바람에 치오는 ‘먹고 싶나요?’를 ‘되고 싶나요?’로 잘못 들었어요. 치오는 무심결에 좀 전에 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걸 떠올리고 엉겁결에 대답했어요.
“저는 새요!”
“새? 아하 새라면! 손님의 너라면은 새라면이군요.” -본문 27~28
드디어 치오가 주문한 새라면이 나왔어요. 과연 새라면은 어떤 맛일까요? 그리고 이 라면을 먹은 치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 백호의 ‘아빠라면’
백호는 학교가 끝나도 데리러 와 줄 사람이 없습니다. 친구들은 모두 부모님 손에 이끌려 집으로 학원으로 순식간에 돌아가 버리고 언제나 백호 혼자 운동장에 남아 예쁘게 지는 노을을 바라보다 쓸쓸히 집으로 향합니다. 가끔 오늘처럼 학원에 안 간 친구들이랑 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날들은 백호 혼자 노는 시간이 아주 많습니다. 해도 지고 배도 고파진 백호는 집으로 향하다 맛있는 냄새에 이끌려 한 가게 앞에 우뚝 섰습니다. 얼마 전 새로 생긴 ‘너라면 가게’였어요.
“무슨 너라면을 먹고 싶으세요.”
주인아저씨가 쑥스러운 듯 웅얼웅얼 물어 보았습니다.
무슨 너라면이라니 어려운 수수께끼 같습니다. 아빠 같은 어른이라면 알 수 있을까요?
백호 머릿속에 생일을 맞은 아빠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라면이든 뭐든 아빠랑 같이 마주 앉아서 먹고 싶었습니다.
“아빠라면…….”
백호도 입속에서 웅얼거렸는데 주인아저씨가 찰떡같이 알아듣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네! 아빠라면 한 그릇!” -본문 48~49쪽
드디어 백호가 주문한 아빠라면이 나왔어요. 과연 아빠라면은 무슨 라면일까요? 그리고 라면을 먹는 순간 백호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요.
◆ 수지의 ‘고양이라면’
수지는 들고 다니는 물건을 깜박하길 잘합니다. 연필, 지우개는 물론 필통, 신발주머니 심지어 겉옷도 놀이터에 두고 온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수지에게 덜렁이라며 물건마다 수지의 이름을 써주었습니다. 수지도 더 이상 그런 야단을 맞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았어요. 오늘도 집으로 돌아와서야 피아노 가방이 없어진 걸 알아차렸지 뭐예요. 수지는 엄마에게 들키지 않으려 혼자서 낮에 백호랑 놀던 학교 운동장에 가보기로 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가방을 둔 곳은 거기밖에 없는 거 같았어요. 그런데 학교는 깜깜한 어둠에 잠겨 무서워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바로 그때 수지의 마음을 약 올리기라도 하듯 어디서 신기한 냄새가 흘러나왔어요. 바로 백호랑 치오가 말했던 학교 앞 ‘너라면 가게’였어요.
“무슨 너라면 줄까요?”
주인아저씨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너라면이라니, 처음 들어보는 라면 이름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수지는 “네.” 하고 대답하고 의자에 앉았습니다. 일단 라면으로 배고픔을 달래고 나면 혹시나 용기가 날지도 모릅니다.
“밤에 돌아다니는 고양이 같으면 무서워하지 않을 텐데.”
무심코 생각하는 말이 입 밖으로 나왔습니다.
“손님의 너라면은 고양이라면이군요.”- 본문 75~76쪽
드디어 수지 앞에 고양이라면이 나왔습니다. 국물이 뜨거우면서도 달짝지근하고 깊은 단맛이 났습니다. 수지는 혀로 입술에 묻은 국물을 핥았습니다. 라면을 먹는 순간 수지에게는 무슨 일이 생겼을까요.
움츠러들었을 때 몸을 쫙 펴 주던 따뜻한 국물 한 숟가락. 그런 국물 요리를 만들어서 불안을 이겨 낼 따뜻함을 주고 싶었습니다. 나와 같을 친구들 마음에도 따뜻함을 안겨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좋다는 것들을, 숨겨 왔던 생각을 모아 봤습니다.
따뜻한 한 숟가락, 간절한 소망 한 숟가락, 용기 한 숟가락…….
다 모은 다음엔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가게 한 곳을 마련했지요.
여러분을 그 가게에 초대합니다.
여러분이라면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꼭 생각해서 와야 합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