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그 지시는 따를 수 없습니다〉
복종과 불복종의 갈림길에서
아돌프 아이히만은 히틀러의 명령을 성실히 수행하여 유대인 600여만 명을 학살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그는 16년의 추적 수사 끝에 검거되어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는 재판에서 자신은 공무원으로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며 상부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면하려고만 했습니다. “나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조직의 톱니바퀴 일부였다”라며 자신의 역할을 톱니바퀴가 돌면 저절로 따라 돌아야하는 부품의 일부로 강변했습니다. 결국 그는 사형을 선고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잘못된 명령에 복종한 사람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유대인들을 도운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유대인을 고용해 1,200명의 목숨을 구한 독일의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 어린이들을 게토에서 몰래 빼내 2,500명의 목숨을 구한 폴란드의 사회복지사 아레나 센들러, 훈련을 가장해 자전거에 서류를 숨겨 유대인들을 도망치게 도운 이탈리아 자전거 선수 지노 바르탈리 등, 이들은 잘못된 권력에 복종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며 옳은 선택을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생명을 걸고 유대인들을 숨겨 주거나 안전한 곳으로 피하게 도왔습니다.
또 독일 안팎에서 다른 방식으로 히틀러와 나치에 저항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독일인 공무원, 장교, 예술가들로 구성된 나치에 맞선 첩보 및 저항 단체, 레드 오케스트라, 뮌헨 대학생들과 교수들이 주축이 된 저항 그룹 백장미단, 히틀러를 암살하려는 ‘발키리 작전’을 계획하고 실행한 나치 독일군의 장교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 나치의 전체주의에 맞서 기독교 저항 운동을 펼친 마르틴 니묄러 목사 등 그들은 각자의 신념과 상황에 따라 저항의 방식은 달랐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나치에 맞서 인권, 정의, 평화를 위해 싸웠습니다.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빅터 프랭클은 유대인으로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서 극한의 고통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서 수용소의 비인간적이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음식이나 자원을 나누고, 비인간적 행동을 거부하며, 희망과 위로를 나누며 인간으로서 존엄한 선택을 한 사람들을 통찰하며 인간에 대한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어도, 마지막 남은 자유인 ‘자신의 태도를 선택하는 자유’는 빼앗을 수 없다.”
프랭클은 비극적 상황 속에서도 ‘인간은 자유롭게 사고하고,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존재’이며 비판적 사고와 성찰, 그리고 올바른 태도를 선택하려는 의지를 통해 인간은 존엄과 자유를 유지할 수 있는 존재임을 강조합니다.
이 책은 잘못된 명령을 받고 그것에 굴복하는 행동과 그것에 불복종하는 행동의 역사적 사례와 연구를 대비해서 잘 보여줍니다. 서로 다른 선택을 만든 생각의 뿌리 또한 대비해서 잘 보여줍니다. 인간이 나쁜 명령이나 잘못된 시스템에 얼마나 잘 굴복하는 존재인지 알게 하면서도 또 인간은 극한의 상황을 극복하고 스스로 사고하며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도 깨닫게 합니다. 그 두 선택의 갈림길에서 서로 다른 판단과 행동을 한 우리의 과거를 분석하고 질문하고 이해하며 그것이 현재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통찰해냅니다.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
내 행동의 책임은 반드시 내가 지게 됩니다.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은 사람들이 권위자의 명령에 얼마나 쉽게 복종하는지를 연구한 심리학 실험입니다. 이 실험은 1961년, 미국 예일대학교의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에 의해 수행되었으며, 나치 독일의 전범들이 “나는 단지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했던 심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연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실험실에는 전기 충격 장치가 놓여 있었으며, 전압은 15V(약한 충격)에서 450V(치명적인 충격)까지 올라가는 구조였습니다. 참가자(선생)는 학습자(연기자)에게 문제를 제시하고, 오답을 낼 경우 전기 충격을 가하도록 지시받았습니다. 실제로는 전기 충격이 발생하지 않았으며, 학습자는 충격을 받는 연기를 했습니다.
참가자의 65%가 450V(최대 전압)까지 전기 충격을 가했습니다. 참가자들은 고통스러워하며 멈추고 싶어 했지만, 권위자의 지시에 따라 계속 버튼을 눌렀습니다. 스탠리 밀그램 실험은 권위에 대한 인간의 복종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심리학 연구입니다. 즉, 일반적인 사람들도 권위자의 명령을 받으면,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동이라도 수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경고하는 실험이었습니다.
밀그램 실험에서 65%의 참가자들은 권위자의 명령을 따랐지만, 35%의 사람들은 도덕적 기준과 책임감을 이유로 실험을 계속하지 않고 거부했습니다. 밀그램 실험은 권위에 쉽게 복종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동시에 모든 사람이 권위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확인되었습니다. 일부 참가자들은 학습자의 비명을 듣고 “이건 잘못된 일이다”라고 판단하여 실험을 멈췄습니다. 몇몇 참가자들은 실험자가 “책임은 내가 질 테니 계속하세요.”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은 결국 내가 진다.”라며 실험을 중단했습니다. 이는 명령을 받더라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느낀 사람들이 거부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책은 어떤 권위자에 의한 명령이든 그것이 옳지 않은 것이라면 “단지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라는 변명으로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면피하지 못하며 우리는 그저 목적을 수행하는 기계의 부품이 아니라 스스로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은 결국 자신이 지게 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게 합니다.
파괴적인 지도자나 거짓 정보를 퍼트리는 미디어들의 나쁜 시도와 선동, 명령에 이용당하지 않도록 잘못된 생각이나 명령에 직접 경계선을 정하고 자신이나 타인에게 해가 될 수 있는 지시를 거절할 수 있도록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며 성찰할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생각하지 않는 죄》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하며 대량 학살과 같은 극악한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윤리적 판단이나 비판적 사고를 하지 않은 아이히만에게 적합한 죄명을 붙였습니다. 그의 죄명은 바로 ‘생각하지 않는 죄’였습니다.
생각하지 않는 죄는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하지 않은 죄’,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도 옳지 않다고 말하지 않은 죄’, ‘옳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행한 죄’, ‘자기 행동의 결과에 대한 책임
을 회피하거나 합리화하는 죄’를 말합니다.
한나 아렌트는 ‘생각하지 않는 죄’라는 죄명을 통해 누구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더라도 그것이 옳지 않음을 안다면 그 반대의 입장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책임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 재판을 통해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악의 평범성은 잔혹한 범죄가 비범하거나 사악한 괴물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깊이 생각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일상적이고 비인간적인 시스템에 복종하는 방식으로 악이 실행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군가 나쁜 명령을 내릴 때 잘못된 선택으로 자신과 타인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쁜 생각과 나쁜 명령은 어떻게 분별해 낼 수 있을까요? 복종과 불복종, 선택의 갈림길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옳은 행동을 이끄는 생각의 뿌리는 무엇일까요?
《생각하지 않는 죄》는 바로 이 물음을 함께 탐색하며 아이들이 무언가 옳지 않은 상황에 놓였을 때 그것을 알아차리고 올바른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생각의 힘을 키우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