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호모사피엔스는 물질문명의 차안此岸에서 몰락의 숙명을 마주하고 있다. 그렇다고 인간 앞에 구원의 피안彼岸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호모사피엔스의 몰락이 곧바로 인간종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똑똑한 기계종의 출현을 인간 자체에 대한 위협 내지는 인류의 몰락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지능과 사고 능력에서 인간의 본질을 찾은 ‘호모사피엔스’의 철학적 문법에 기인한다. 그러나 이런 문법에서 볼 때, 머신사피엔스의 출현이야말로 오히려 지능과 사고 능력이 인간의 유일하고도 압도적인 본질이 아니라는 것을 현시하는 비유적 해프닝이 된다.
누구보다 빨리 달리는 것이 중요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구석기 시대 무렵에 우세한 인간종이었을 그들은 ‘호모러너HomoRunner’로, 달리기야말로 생존·진보·도전을 향해 끊임없이 치닫는 인간의 본질을 표상했다. 그런데 누군가 말을 길들여 타기 시작했고 ‘빨리 달리기’에서 인간이 더 이상 말과 경주하는 것이 무의미해지자 호모러너는 몰락했다. 빨리 달리려면 말을 타면 그만이었고, 대신 인간은 도구를 만드는 손재주를 더 정교하게 발전시켜 호모파베스HomoFaber가 되었다.
물론 이것은 역사의 서술이라기보다, 지금 호모사피엔스가 처한 몰락과 인간종의 새로운 진화에 관한 철학적 우화이다. 앞으로도 우리 후손들이 오래도록 지구에서 살면서 행복하고 번창하기를 바란다면, 물질문명의 부정적인 영향을 완화하고 인간다움이 실현되는 사회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호모사피엔스가 몰락한 이후 호모종이 다시 진화할 ‘인간다움’의 길이 무엇일지 찾아야 한다. 길들인 말이 이미 달리기 시작했는데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하고 여전히 빨리 달리기에 몰두한 인간종이 몰락했듯, 지능이 높고 똑똑한 기계가 이미 등장했는데 한결같이 똑똑하기만을 바라는 인간종은 거스를 수 없는 파도에 휩쓸리고 말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물질문명의 부정적인 영향들마저 과학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 발전의 핵심 역량이 인간에서 기계종으로 옮겨 가는 현실에서, 물질적인 것의 발전만을 신봉하다가는 결국 기계종의 하위 종으로 전락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인간이 초래하는 환경 위기, 인간 소외와 정서적 불안정, 사회적 불평등, 도덕·가치의 혼란, 전쟁과 갈등, 정치적 양극화와 분열 등의 문제마저 결국 AI와 로봇에 의존하여 해결하는 미래란 과연 유토피아 아니면 디스토피아 중에 무엇일까? AI조차도 “미래가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는 기술 자체의 능력이 아닌, 인간의 선택과 가치 판단에 달려 있다”고 답한다.
물질문명의 임계점에 선 인간은 이제 지능과 이성을 자기 본질로 여겼던 호모사피엔스의 신화에 작별을 고하고, 다시 자기 안에서 구원의 빛을 찾아야 하는 불가피한 숙명을 마주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전병훈은 우리에게 인간의 진정한 본질인 ‘정신’을 향해 나아가라고 제시한다. 그것은 이성을 철학으로 신봉하고 정신을 신화로 치부했던 물질문명 시대의 문법을 전도轉倒하는 철학적 초월이고, 물질문명이 발전하는 긴 역사 과정에서 인간이 상실했던 원초적 정신과 본성을 재발견하는 진화이다. 그것은 또한 사회를 단지 사람들 간의 ‘계약’과 ‘이익’의 총량으로 환원하는 계산기를 내던지고, 현대 과학과 공리주의적 윤리학이 외면한 인간의 천부적 양심과 도덕을 회복하고, 온 세상 사람이 ‘우내일가宇內一家’의 세계시민으로 상호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세계가 하나의 민주·공화 지구공동체로 통일되는 문명 진화이다.
“현세에 바야흐로 법치를 앞다퉈 숭상하지만 반드시 장차 예치로 반본返本하고, 현세의 물질문명이 반드시 더욱 진화하여 정신문명으로 들어갈 것”을 말하는 전병훈의 비전은, 우주적 들숨과 날숨의 숨결을 따라 직선이 아닌 나선으로 반본과 진화를 거듭하는 문명 진화의 여정을 함축한다. 그것은 자기 정신(영성)의 본성을 자각한 인류, 이를테면 ‘호모스피리투스HomoSpiritus’가 지구 행성에서 새롭게 여는 우주적 진화의 여정이다. 이 책은 그런 진화의 여정에 나설 사람들을 위해, 1백 년 전 우주의 새벽빛(曙宇)이 혼신의 에너지를 쏟아 만든 가이드북이다. _서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