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지심의 신작소설 〈인간은 죽지 않는다.〉는 제목과 내용 모두 소설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 상식을 충격한다. 이 소설은 현실 세계의 욕망과 갈등, 혹은 인간 내면의 선악을 파헤치는 일상적 이야기 차원을 벗어나, 우리의 체험과 인식 밖에 있는 사후세계를 마치 ‘현실처럼’ 약여(躍如)하고 핍진(逼眞)하게 다룬다. 한 여성의 임종 순간 이후 머무르게 되는 중유(中有)의 세계, 그 중유(中有)의 세계에서 정신적 진화를 거쳐 현실 세계로 다시 환생하기까지의 얘기를 그린(제1부), 환생 후 법운사와 예경원을 중심으로 한 ‘생명의 실상’ 공동체 활동을 그린(제2부) 등 〈인간은 죽지 않는다〉의 서사는 인간의 정신적 수행 및 이타적 실천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불교의 윤회와 보현행원 사상을 근간으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죽지 않는다〉의 장르적 성격은 이야기로 풀어낸 화엄경 ‘십지품’의 변상도라 명명해도 크게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죽지 않는다〉는 불교적 사유,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 연기 윤회적 관점에서 인간의 죽음과 생명의 실상을 탐구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인간의 죽음과 그 이후의 상황을 직접 다루었다는 점에서 소설의 신기원을 이룰 뿐 아니라, 남북 분단 이후 갈수록 첨예화 극단화하고 있는 한민족의 분열과 갈등 등 민감한 현실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만하다.
〈인간은 죽지 않는다〉가 사후세계(死後世界)를 다룬 소설로도, 업생(業生)이 아닌 원생(願生)을 다룬 소설로도 국내외(國內外)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다 하니 불교문학을 해 온 작가로서 한 획을 그었다는 자부심이 느껴진다.
이제부터는 독자들의 몫이다. 금 생에서 나의 마지막 소설이 될 〈인간은 죽지 않는다. 1-2권〉이 독자들의 가슴에 어떻게 투사될지 경건한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평론
각각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현실적 서사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공감
『인간은 죽지 않는다』는 환생에 관한 이야기다. 불교에서는 서원을 세워 자신이 원하는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것을 원생(願生)이라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원생 또는 환생에 관한 대표적인 이야기는 티베트 고승의 환생이라는 ‘달라이라마’ 이야기일 것이다. 종교적 믿음이 있거나 그렇지 않거나에 관계없이 다시 태어나는 생이란 짧은 한 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크나큰 관심거리다
제1권, ‘나’는 이승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환한 빛을 따라간 결과 중유 세계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여러 명의 스승을 만나는 동시에 이승에서 인연 있던 인물들을 재회한 뒤, 각각의 단계에 맞는 수련을 거쳐 원생에 따라 세상에 다시 돌아온다.
“작가는 인간의 가장 오랜 관심사인 죽음·환생·윤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수행자와 스승의 대화를 통해 풀어나간다. 육신과 분리된 화자의 영혼은 중유 세계에서 스승을 만나 ‘나의 실체’가 곧 ‘빛의 파장’이며, 인간계를 포함한 우주 전체를 가리키는 현상계란 마음이 펼쳐낸 무대이고, 모든 생명체는 그 무대의 연기자일 뿐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한 생명체가 어떤 세계의 어떤 형상으로 태어나는가는 전적으로 숙업(宿業)과 관련된다. 중생은 “실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하는 것처럼 착각하면서 끝없이 욕망을 키워가는”데, 그것이 ‘무지’임을 깨달아야 ‘지혜’와 ‘이타심’을 증득할 수 있다.
모든 생명은 육신과 정신의 결합으로 이뤄지며, 육체는 소멸하더라도 정신은 사라지지 않고 진화한다. 중유 세계(제1부)에서 ‘통합’과 ‘참회’ 두 영혼은 ‘정신의 진화’에 대해 토론하면서, 물질주의자들의 최대 오류가 정신을 부정했기 때문에 정신의 진화마저 부정한 점이라는 데 공감한다. 이와 함께 인간의 정신(영혼)은 소멸하지 않고 자신의 숙업과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것으로 설명된다. ‘참회’가 자기 사상의 오류를 깨달은 것이 현상계가 아니고 육체와 정신이 분리된 중유 세계에서라는 것은 인간 정신의 진화에 대한 강력한 방증이라 할 수 있다.
생명의 진화는 생명의 실상에 대한 적확한 이해에서 기인한다. 중유 세계에서 정려에 든 화자는 자신의 생명이 진여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진여에서 생겨난 현상계는 빛의 파장으로 끝없이 퍼져나가 우주 만물을 만든다는 사실을 정확히 이해한다. 하지만 인간들은 지구에 붙박혀 살고 있어 그 세계에 대해서만 조금 이해할 뿐, 지구계를 벗어난 은하계, 더 나아가 은하계 밖의 무한한 세계에 대해서는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해인 스님에 따르면 “우주도 정신에 해당하는 진여의 세계와 육신에 해당하는 물질세계가 결합한 것으로, 진여의 세계와 물질의 세계가 갈리는 경계를 진여문과 생멸문”으로 구분한 것은 현상계와 유사하다. 다만, 그 세계는 지구와 경계와 차원이 전혀 달라 오직 부처만이 이해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중생이 보살이 되고 보살이 부처가 되는 정신의 진화를 통해 차원의 초월이 얼마든지 가능하므로 우주 너머의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를 이해하는 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정신의 진화는 “인류를 진화시키기 위한 방법을 스스로 찾는 단계, 자신이 찾은 방법을 연마해서 실제로 힘을 기르는 단계, 기른 힘을 자유자재로 쓰는 단계”로 이루어진다. 요컨대 정신의 진화는 중생 제도의 서원을 세워 부단한 수행으로 보살이 된 뒤 자비행을 실천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보살이 중생계로 환생하는 이유는 “중생계는 보살의 공부를 완성시키는 도량 중 가장 우수한 학교”이고, 보살은 중생 제도로 부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강조되고 있듯이,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은 중생에서 곧바로 부처가 되는 비약이 가능하다는 게 아니라 수억 겁의 윤회와 진화를 거쳐야 비로소 그 단계에 이를 수 있으므로 부단한 수련과 참회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장영우 평론 ‘생명의 실상과 진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