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이미 발표한 작품이 오래 남기를 바라는 것은 창작자 누구에게나 당연한 희망이다. 그러나 더 이상 세상에서의 상품성이 없어 사라지고 나면 간혹 구하고 싶은 독자가 있어도 구하지 못하게 된다.
무릇 작품이 세상에서 오래 남을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면 쿨하게 인정하고 역사의 땅밑에 묻고 길을 나서는게 자기분수를 아는 작가의 적당한 처신일 것이다. 제대로의 명분없이 재출간하여 독자의 관심을 구걸하는 것은 구차할 것이로되 그럼에도 비록 그 하나를 외따로 다시 내놓기에는 배포가 받쳐주지 않더라도 부끄럼도 함께 받으면 덜하다는 심리에 편승하여 네 작품을 함께 다시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
작자는 여기 올려놓은 네 작품은 각각이 그 전후세태의 흐름에 관련이 있는 것이어서 결코 일회성의 해프닝으로 묻혀질 작품이 아니라고 스스로 변명하는 것이다.
〈마지막 공주,2007〉는 후에 드라마 〈검사 프린세스〉와 연관이 있었다. 〈꽃잎처럼 떨어지다,2008〉는 이십오세에 삶을 마친 여배우의 삶을 소재로 했는데 그러한 일이 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을 기대하며 발표한 작품이니 응당 그 효과가 있어야 할 것인데 근래에도 유사한 사건이 일어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당시에 충분한 전파가 되지 못했음을 한탄할 일이었다. 〈은하천사의 칠일간 사랑,1997〉은 이후 〈별에서온 그대〉라는 빅히트 드라마로 거듭났다. 중국에서의 게임名인 銀河天使는 후에 일본의 갤럭시안 엔젤을 번역한 이름이다. 〈잃어버린 세대,2000〉는 한국영화 최초의 천만관객 블록버스터인 〈태극기 휘날리며〉로 거듭났다. 이처럼 모두가 우리의 문화사에서 한자리를 담당하는 모티프라고 감히 생각되기에 여기 다시모아 시대의 문제를 간파할 자료로 세상에 오래 남도록 힘써보는 것이다.
중요주제
마지막공주
오늘날과 같이 신분의 평등이 공식화된 사회에서도 과연 봉건시대와 같은 불평등한 연애관계가 존재할 수 있는가, 그리고 왕조가 부재한 오늘날에도 뭇 여성의 꿈이라 할 수 있는 공주가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를 다시 묻고, 만약 그러하다면 현대적 의미에서의 공주는 무엇일까를 함께 알아보기로 한다.
* 오늘날의 공주는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이 선택하고 그로부터 지극한 사랑을 받는 여자
* 한 여검사의 의문의 죽음과 생전의 사랑을 추적하면서 사랑의 의미를 되새긴다.
꽃잎처럼 떨어지다
한창의 여배우 박혜영,
그녀는 왜 죽음을 택해야 했나?
과연 그녀 자신의 우울 탓이라고만 해야 하는가?
그녀는 이 사회의 모순에 떠밀려 삶을 놓아야 했던 것이 아닐까?
발밑에 짓이겨진 꽃잎을 두고 우리는 단지 꽃줄기가 너무 약했다고만 탓할 수 있을까?
은하천사의 칠일간 사랑
은하계 중심에서 온 우주인 은하천사와 지구인 여성과의 사랑!
(본문 중에서)
“여길 뭐라고 하지요?”
은하천사는 운선의 가운데 넓게 노출된 부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농담하는 거예요? 배지 뭐예요?” 운선은 바람 빠지는 목소리로 답했다.
은하천사는 그곳에 얼굴을 더 가까이 들이대고 중얼거렸다.
“이 가운데 있는 자국은 사출성형(射出成形)을 하고서 남은 것 같은데…”
(본문 중에서)
“아니 그래 남녀의 결합을 위한 짝의 선택을 주로 상접속부의 상태를 점검해 보아서 결정 한다고요?”
“그렇다고 볼 수도 있죠. 대개 서로의 결혼을 결정하는 동기는 진실하게 서로를 이해해 준다고 믿는 것에 있으니까요.”
“그래도 결혼 후 빈번히 접속하게 될 부위의 호환성 시험은 거쳐야 하지 않을까요?”
잃어버린 세대
* 전쟁 속에 싹튼 人間愛
(본문 중에서)
『아니네。 나는 요즘 들어와서 더욱 인간들 사이의 調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네。 인간이란 결국 우주의 일부분이니 인간 하나하나의 영혼이 모여 우주를 이루는 것이지。 그러니 한 穩全(온전)한 인간으로서, 그의 마음상태가 주변 다른 사람들의 마음상태로부터 자유로와질수 없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야。 인간이 서로가 아픔을 같이하고 生死의 운명도 함께하려 하는 것。 이것은 진정 높은 차원의 정신적 안정을 추구하는 노력에서 말미암은 것이 아닐까 생각되네。 同時代인의 고통과 죽음을 자신과는 무관하게 생각하지 않으려는 그런 마음은, 非但 비겁자라는 너울을 쓰기 두려워서가 아니라, 무언가 이 우주를 이루는 큰 질서로부터 벗어난, 부조화의 나락에 떨어지지 않으려는 몸부림에서부터 나온 것이라고 생각되네。』
(본문 중에서)
그 時間。。。 하늘의 푸르름은 生命가진 者들의 보기에 즐겁도록 그런 것이었고 언덕에 퍼져있는 풀꽃내음의 싱그러움은 움직이며 사는 者들의 피곤함을 덜어주기 위함이었다。 山새의 지저귐은 땅 위에 사는 자들의 고달픔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었으니。。。 그 가운데 있는 삶은 정녕 아름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