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 철학한다는 것은 ‘나의 등불로 밝히고, 나의 눈으로 보는 것’을 의미한다. 즉 철학은 바르게 보는 것이며,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알고자 하는 지적 사유 체험이다. 하지만 ‘있는 것’과 ‘보이는 것’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참된 앎이란 바르게 보는 것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아는 것을 의미한다.
붓다의 교설에 따르면, 이 세계에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만물은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으며, 만물 간의 관계 속에서만 세계가 현상한다. 그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법이다. 즉 세계에 속하는 것은 어느 것도 실재하지 않으며, 만물은 모두 연기적 현상이다. 이것이 붓다가 본 ‘있는 그대로’의 세계이다.
붓다에게 ‘있는 것’은 ‘변화하는 현상’이고, ‘없는 것’은 ‘아트만’, 즉 ‘불변하는 궁극의 실재’이다. 붓다에게 이런 ‘아트만’은 ‘있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그것은 참된 진실이 아니다. 불교철학은 이 같은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성찰이며, 2천 수백 년 이상 이어져 온 주석의 역사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인간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면서, ‘무아(無我)’의 깨달음을 통해 고통을 극복하는 길(mārga)을 제시했던 붓다의 가르침과 그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주석의 지성사를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불교라는 사유전통은 서로 다른 풍토에 뿌리내린 다양한 삶의 역사가 상호 교류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성되었다. 불교사상과 문화는 다채롭고 심오한 사유의 싹들이 자라 줄기와 가지를 뻗으며 이루어 낸 풍성한 나무이자 숲과 같다. 불교를 단일한 하나의 개념이나 사상체계로 축소하는 이해하는 것은 숲을 보지 않고 나무에 집착하는 태도로 불교를 판단하는 편협한 관점이다. 불교는 살아 있는 생물이다.
불교는 또한 어떤 ‘본질주의’적 정의도 거부한다. 모든 존재와 현상은 무한한 조건들에 의존하여 발현한다는 불교의 진리에 대해 ‘불교’ 자신도 예외는 아니다. 사람과 정보와 지식이 교류하고 융합하고, 혹은 투쟁하면서 불교의 사상도 초기불교, 아비다르마의 다양한 학파들, 다르마의 실재성을 주장하는 설일체유부, 존재와 인식 사이의 간극을 발견한 경량부, 만물은 연기적 현상이며 본질에서 텅 빈 공(空)이라고 논증한 중관, 세계는 단지 의식의 발현일 뿐이라는 유식, 동아시아의 천태와 화엄사상, 선불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철학(사상)을 낳은 것이다.
신학을 전공한 저자는 더 깊은 공부를 위해 떠난 유학길에서 만난 불교를 공부하기 위해 역유학을 한 독특한 이력을 보여준다. 그런 저자에게는 불교에서 사용하는 용어, 개념, 언어 등은 낯설고 어려웠다. 전혀 다른 세계였던 것이다.
저자는 이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이렇듯 자신이 겪었던 어려움을 생각하면서 ‘일상어로 불교에 들어가는 길을 안내해 주는 개론서’, ‘아직 불교철학에 낯설지만 알고자 하는 지적 욕구를 가지고 있는 학생들과 불교의 지적 전통에 관심 있는 독자들을 위해 개론서’를 지향하며 이 책을 저술하였다.
간략하지만, 이 책을 통해 2,500여 년의 긴 시간 동안 쌓아온 주요 불교철학과 학파들의 핵심 주장들을 오늘의 언어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