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나 정치에 관해 이런 저런 자리에서 이야기를 할 때에 종종 법과 정치를 스포츠경기에 비유하고는 한다. 스포츠경기에서는 경기자의 기술과 기량이 제일 중요하겠지만, 경기를 공정하게 하고 경기규칙을 지키는 것도 매우 중요시 한다. 따라서 선수와 감독은 경기규칙을 잘 알아야 하고 지켜야 하며, 선수가 규칙을 위반하는 경우에는 벌칙이 주어지며, 규칙의 위반 여부를 판정하여 경기의 공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심판이 존재한다. 스포츠경기를 하는 선수는 물론이고 경기를 보는 관중도 규칙을 알고 있다. 규칙을 지키면서 공정하게 경쟁하면서도 우수한 경기력을 보여주는 선수에게는 박수를 보내고, 경기의 결과에만 집착하여 규칙을 어기며 꼼수를 부리는 선수에게는 야유를 보낸다.
헌법정신과 헌법규정은 해석을 필요로 하며, 헌법해석은 정파나 진영 혹은 개인적 지식과 소신에 따라서 중구난방이라고 할 정도로 매우 다양하다. 다양성은 민주주의의 특징이고 인간의 본질적인 속성이기 때문에 의견의 다양성을 비난할 수는 없다. 의견의 다양성을 비난하고 획일화하게 되면 전체주의와 독재체제로 가는 길을 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견이 다양한 개인과 단체들이 존재하는 국가에 주어진 과제는 이러한 다양한 의견을 취합하고 조정하여 법과 정책에 반영하는 것이고, 이렇게 정해진 법과 제도는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을 응원단 정도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국민들은 응원단이 아니라 잘잘못을 지켜보고 선거를 통해 판정을 내리는 심판이라는 점을 명심하여야 한다.
법은 일정한 체계를 지니고 있는데, 제일 위에는 헌법이 있고 그 다음에는 법률이 있으며 법률 바로 아래에는 법률을 보다 구체화하고 법률 시행에 필요한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의 행정 입법이 있는데, 법률과 행정입법을 합하여 법령이라 한다. 곁가지와 작은 줄기들이 있지만 헌법·법률·행정입법이 나무의 몸통에 해당하는 것이며, 이러한 수직적인 규범체계가 있기 때문에 한 국가의 헌법이 중요한 것이다. 헌법에 어긋나는 법률이 허용될 수 없고 헌법과 법률에 어긋나는 행정입법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헌법의 해석이 중요하고 법률의 해석이 필요하게 된다.
이념적 갈등이건 정치적 갈등이건 지역갈등이건 남녀갈등이건 세대갈등이건 간에, 사회적 갈등이 심한 경우에는 헌법과 법률을 해석하는 일도 쉽지가 않다. 스포츠경기에서도 선수들이 심판에게 무언가를 주장하고 항의하는 것이 경기규칙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해 주기를 바라는 행동인 것처럼, 헌법규정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해 달라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헌법이나 경기규칙에 있어서 공히 중요한 것은 이전의 판례를 존중하고 심판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다. 우리 국민 모두가 수차례 경험한 바와 같이 헌법해석에 있어서는 다양한 의견과 주장이 있으며, 동일한 사실관계에 있어서도 헌법의 해석 여부에 따라 결론과
판결은 달라질 수 있다.
스포츠경기에서 심판의 결정을 존중해야 하고 심판에 대한 존중이 스포츠맨쉽의 하나로 여겨지듯이, 헌법해석에 있어서도 헌법재판소와 법원의 결정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고 이들 헌법기관 자체에 대한 존중도 필요하다. 헌법기관의 결정에 대한 비판은 가능하지만 헌법기관의 결정을 부정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떠한 정치적 입장에 있건 간에 헌법기관을 폄훼하고 공격 한다거나 이러한 헌법기관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국가는 큰 혼란과 위기에 처하게 된다.
연구자들에게는 자기가 연구하는 분야의 내용을 보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전달할 수 있도록 책을 쓰려고 하는 희망이 있다. 대학에서 사용하는 헌법교재는 보통 1천 페이지 내외이고 어떤 책은 2천 페이지에 이르는 것도 있기 때문에, 교양으로서 읽을 만한 헌법책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교양 헌법이라고 하여 너무나 기초적이고 쉬운 내용만을 다루게 되면 헌법을 이해 하기에 매우 부족할 수가 있다. 헌법이 현실적으로 적용되고 작동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법령과 대표적인 판례를 알아야 한다. 130개의 헌법조문은 해당 조문을 구체화하거나 제한하는 법령을 알아야 하고 이러한 조문들이 해석되고 적용되는 판례를 알아야 헌법이 어떻게 현실화되거나 제한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의 제목을 법령과 판례를 통해 읽는 교양 헌법이라고 하였다. 우선 헌법 130개 조문을 모두 박스에 넣어 적절한 곳에 배
치하였고, 헌법조문을 구체화하거나 헌법기관의 권한을 제한하는 내용의 법률(국적법, 정당법,공직선거법, 개인정보보호법, 청원법, 국회법, 정부조직법, 계엄법, 법원조직법 등등)을 중요한 조문을 중심으로 하여 소개하였다. 그리고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 헌법조문을 해석한 헌법재판소의 판례들을 엄선하여 소개하였다. 헌법재판소 창립 30주년 기념으로 국민들이 선정한 30개의 판례, 헌법교수들이 선정한 분야별 중요 판례 그리고 한국사회를 바꾼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판례, 언론에서 중요하게 다룬 판례, 헌법재판소에서 선정한 판례요지집과 분야별 중요 판례 등에서 교양 헌법의 취지에 적절한 판례를 선정하여 소개하였다. 법령과 판례는 요약하고 설명된 내용을 읽는 것도 좋지만 법령원문과 판례원문을 직접 읽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이론적인 체계와 내용을 간단히 설명한 후에 법령원문과 판례원문을 배치하여, 헌법의 전체적인 체계와 내용을 파악하고 그에 적당한 대표적인 법령과 판례를 파악할 수 있도록 서술하였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국민은 정치인들의 응원단이 아니라 심판이다. 국민들이 응원석에서 원래의 자리인 심판석을 되찾고, 필드에 있는 정치인들이 그에 합당한 태도와 국민에 대한 예의를 갖추었으면 하는 것이 한 사람의 헌법학자로서의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