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의 프랑스혁명사 권위자가 번역한
알베르 소불의 혁명사 시리즈 결정판
《프랑스혁명사》는 알베르 소불이 남긴 학문적인 대(大)작업의 첫 결실인 《프랑스혁명사 개설》(1962년 출간)의 개정판이다. 《프랑스혁명사 개설》의 보급판이 1984년에 국내에서 출간된 적이 있지만, 개정판 정본이 완역되어 출간된 것은 이번이 최초이다. 국내 최고의 프랑스혁명사 권위자인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최갑수 교수가 우리말로 새로 옮겼다.
1960년대 중반 이후 프랑스혁명에 관한 전통적인 해석에 이의를 제기하는 실증적인 연구 성과가 많이 축적되면서 소불은 《프랑스혁명사 개설》을 수정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1982년 소불은 전면적인 개정 작업에 착수했지만, 그해 급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타계한다.
책 전체에 걸쳐 수정과 내용을 첨가한 소불의 작업을 이어받아 제자들이 본문을 정리하고, 소불이 개정의 밑그림으로 그려 사망 한 해 전에 발표했던 논문 두 편 〈혁명적 군중〉과 〈혁명이란 무엇인가?〉를 부록으로 실었다. 이로써 프랑스혁명 연구에 관한 프랑스 전통 사학계의 해석을 대표하는 ‘최후의 종합적인 프랑스혁명사 개설서’가 완성될 수 있었다.
《프랑스혁명사》는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서론부’에서는 18세기 말 구체제 프랑스의 경제 동향에 관한 소불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삼아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게 된 사회적 배경을 상세히 다룬다. ‘1부·2부·3부’에서는 혁명이 일어난 1789년부터 공화국이 몰락하고 총재정부가 집권한 1799년까지 프랑스혁명 10년의 진전과 성쇠를 부르주아와 민중이라는 혁명 주체를 중심으로 하여 흡인력 있게 그려 간다. 마지막 ‘결론부’에서는 프랑스혁명이 프랑스뿐 아니라 현대 사회에 불러일으킨 쟁점이 무엇인지 다루면서 프랑스혁명의 특수성과 현대적 의의를 보여준다.
왜 여전히 소불을 읽어야 하는가?
“프랑스혁명은 인기를 잃었다. 역사적 의미는 여전히 인정받고 있지만, 평판은 추락했다. 대중과 학계의 많은 이들에게 프랑스혁명은 근대 세계에서 폭력, 공포 정치, 전체주의, 그리고 심지어 집단 학살(제노사이드)의 전조가 되었다.” 영·미의 혁명사학계를 대표하는 이가 ‘미국역사학회(AHA)’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한 증언이다. 이 얼마나 엄청난 의미의 역전인가? …… 모든 혁명이 단두대에 오른 것은 아니다. 혁명은 ‘좋은’ 혁명과 ‘나쁜’ 혁명으로 분류되었다. 영국혁명과 미국혁명은 폭력과 유혈 사태를 동반하지 않은 ‘좋은’ 혁명으로, 프랑스혁명과 러시아혁명, 기타 모든 제3세계의 혁명들은 모두 엄청난 인권 유린을 부른 ‘나쁜’ 혁명으로 치부되었다. ……
우리가 이런 일련의 수정 해석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기존 질서(특히 자본주의)를 문제시하는 모든 근본적인 물음을 불온시하는 순응주의이다. 그리고 이렇게 과거를 현재 및 미래와 단절하는 모든 학문적 시도는 이데올로기의 공세일 뿐 참된 의미의 역사학이 아님은 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가 소불을 여전히 읽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학은 과거를 통해 우리의 오늘을 낯설게 봄으로써 성찰하는 것을 학문적 사명으로 삼고 있다. 그렇기에 ‘역사의 견인차’인 혁명을 반혁명으로 치부하는 행위는 아무리 아카데미즘의 외피를 쓰고 있다고 하더라도 비역사적이요, 심지어 반역사적이다. 소불의 이 책은 프랑스혁명이라는 과거에, 그 주인공들과 심지어 희생자들에게조차 현재적 의미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 ‘역자 후기’에서
프랑스혁명을 만든 이들은 누구인가?
《프랑스혁명사》는 구체제 부르주아와 혁명의 무대 뒤편에 존재했던 도시 민중과 농민을 중심으로 하여 프랑스혁명을 재구성한다. 다양한 부류의 부르주아들이 혁명을 주도했지만, 지배층의 분열 속에서 도시와 농촌의 민중이 대거 혁명 무대에 진입했음을 밝힌다.
알베르 소불은 민중의 관점에서 프랑스혁명을 서술하여 ‘아래(d’en bas)로부터 보는 역사학’을 이룩한 장 조레스의 연구 성과를 이어받아, 엄청난 사료 작업을 거쳐 ‘농민 혁명’과 ‘민중 혁명’이 존재했음을 입증했다. 부르주아지가 주인공이지만 도시 민중과 농민이 개성이 강한 조연 역할을 하는 거대한 사회 혁명으로서 프랑스혁명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혁명이란 무엇인가?
알베르 소불은 《프랑스혁명사》에서 혁명의 개념을 명확히 정립하고, 이를 통해 프랑스혁명의 본질적인 특성을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혁명이란 기존 국가 기구의 파괴뿐만 아니라 국가 기구를 지배하는 사회적 관계와 정치 구조의 근본적인 변모를 뜻한다. 즉, 혁명의 목표는 구질서의 개선과 악폐의 완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특권과 봉건제를 폐지하고 새로운 사회 질서를 창설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원인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당시 프랑스 국민들이 겪었던 모순적인 현실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혁명의 과정에서 옛 사회적 관계는 특권계급과 민중계급 간 일어난 계급투쟁의 과정에서 파괴되었고, 혁명 이후에는 그 이전의 절대왕권주의와 본질적으로 다른 민주주의와 같은 제도가 힘을 얻었다. 소불은 부르주아지라는 새로운 사회 세력이 도시의 민중층과 농촌의 농민층의 지원과 견제를 받으면서 어떻게 혁명을 통해 근대 사회와 근대 국가를 빚어냈는지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