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작디작은 씨앗 안에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들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씨앗을 심고 거두는 일은 씨앗을 보존하는 동시에 미래를 가꾸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로써 우리 모두는 씨앗 은행이 될 수 있습니다!
- 김진옥(서대문자연사박물관 학예사)
신비로운 씨앗의 세계
씨앗은 참 신기하다. 다리도 없고 날개도 없는데 여기저기 퍼지고 땅속에 뿌리를 내린다. 그러고는 푸릇푸릇한 싹을 내놓는다. 부모 식물과 제한된 자원을 두고 경쟁하지 않고 스스로 자립하기 위해 씨앗은 갖가지 방법을 쓴다. 동물에게 먹힌 다음 똥 속에 섞여 나오기도 하고, 겉에 난 가시를 통해 동물이나 인간에게 붙어서 멀리 이동하기도 한다. 바람 또는 물을 타고 가기도 하며, 심지어 산불의 열기 속에서 깨어나기도 한다. 이 얼마나 영리한 존재인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씨앗이 고유한 방식대로 움직이고 번식하는 일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저자는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 원인으로 다국적 거대 종자 기업의 씨앗 독점과 기후 위기를 꼽는다. 씨앗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은 종자 기업들은 농부들이 씨앗을 보존하고 나누는 것을 금지한다. 대를 이어 씨앗을 거두어 보존하던 농부들은 이제 매번 그런 기업들에 돈을 지불하고 씨앗을 사야 한다. 그러다 보니 농부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은 좁아지고, 자연스레 생물 다양성도 줄어드는 상황이다.
기후 위기가 씨앗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강력하다. 오늘날 극심한 기상 이변과 연이은 폭염, 가뭄, 태풍 등으로 전 세계 수많은 서식지가 파괴되고 여러 동식물이 멸종 위기에 놓였다. 이런 상황에서 씨앗 또한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씨앗을 옮겨 주던 동물, 꽃가루받이를 도와주던 벌과 나비 없이, 일정한 기후의 뒷받침 없이 씨앗은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씨앗마저 사라진다면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 또한 생존할 수 없다. 생존의 기반이 되는 씨앗 지키기에 우리 모두가 나서야 할 때이다.
씨앗이 있어야 우리 미래도 있다!
씨앗은 오랫동안 지켜져 왔다. 지금으로부터 1만 2,000년 전, 인류가 한곳에 정착해 농사를 짓기 시작한 뒤로 줄곧 씨앗은 보존되어 왔다. 인류는 색이나 모양, 맛이 좋은 식물의 씨앗을 골라서 보존하면서 우수한 형질의 식물을 후대에 전해 줬다. 이것을 ‘선택적 육종’이라 한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달콤한 과일은 선조들이 마음에 드는 작물의 씨앗을 수차례 거두고 보존하고 개량해 온 결과일 것이다.
이 책에는 전 세계 수많은 과학자와 활동가가 씨앗을 보존하기 위해 펼친 여러 활동이 담겨 있다.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 러시아 식물학자이자 유전학자인 니콜라이 바빌로프와 학자들에 의해 맨 처음 ‘씨앗 은행’이 세워졌다. 그 뒤로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 생겨난 씨앗 은행은 그 수가 1,400개에 이른다. 책이 아닌 씨앗을 빌려주는 공공 도서관도 생겨났으며, 각지에서 씨앗을 교환하고 나누는 행사나 SNS를 통한 씨앗 나눔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원예가이자 도시 농업 전문가로서 평생 동안 텃밭을 가꾸어 온 저자가 소개해 주는 씨앗 나눔과 보존 활동의 사례는 독자들에게 호기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또한 씨앗의 중요성과 가치에 비해 씨앗을 심고 거두어 보존하는 일이 어렵지 않음을 일깨워 주어, 씨앗 보존과 나눔을 실생활에서 실천하도록 이끈다. 지속 가능한 지구를 만들어 가는 일에 관심 있는 어린이와 교사, 어른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