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꿰뚫는 시선
현대 사회는 개인의 존재마저 사회의 작동을 위한 하나의 부품으로 환원시킨다. 현대인들은 어떻게든 그 속에서 ‘진짜 나’라는 것을 찾으려 애쓴다. 공산품을 그러모아 자기 자신을 정립하려는 시도도, 각종 기호로 우리 자신을 표현해 보려는 시도도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는 시대 속에서 우리는 어떤 지점에서 우리 자신을 찾기 위한 단서를 얻어야 할까.
작가는 답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어떤 길을 보여 준다. 「커피와 하루」는 이름을 감춘 것만으로도 모호해져 버리는 개인을 보여 주며, 인간 존재가 정의되는 기원을 찾아 들어간다. 「안내」는 미신을 업신여기던 ‘성준’이 기이한 하숙집 주인 ‘차휘랑’을 통해 점점 변화되는 모습을 조망한다.
끊임없이 변하는 인물을 보며 우리는 자아와 존재의 정의를 다시 쓰게 된다. 주변의 것을 소유하고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의 상호작용이 그 존재를 정의한다. 심아진 작가의 소설집을 통과하면서 우리는 넓고 열린 세계를 향해 발을 뻗게 된다.
무결하지 않은 실제의 인간
우리의 삶은 선과 악을 나누기 모호한 지점에서 펼쳐진다. 심아진의 소설집 『안녕, 우리』는 선악의 회색지대에 위치한 존재를 면밀히 들여다보며 인간의 본질에 대해 사유한다.
핍박받는 외국인 노동자인 동시에 흠결을 지닌 존재로 그려지는 레이(「혹돔을 모십니다」), 여러 여자를 동시에 만나면서도 자신은 그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남자(「불안은 없다」)는 시대가 요구하는 ‘올바른 사람’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있다. 무결하지 않은 인물을 따라가며 우리는 보다 현실적인 세계를, 보다 다층적인 의미를 마주할 수 있다.
사람과 사랑과 삶
삶을 들여다보는 작가의 시선은 이윽고 인류의 근원적 감정, 사랑에 가닿는다. 심아진 작가가 그리는 사랑은 다채롭다. 그의 사랑은 낭만적이면서도 비참하다. 분명한 촉감으로 남아 있으면서도 허망하다. 죽은 연인의 사인을 파고들수록 사랑의 양면성이 드러나고(「절정의 이유」), 젊은 시절의 사랑을 떠올리면서 현재 자신을 이겨 보고자 발버둥 친다(「안녕, 우리」). 사랑을 보는 작가의 눈은 지극히 냉정하다. 하지만 그래서 더 현실적이고 본질적이다.
포장을 걷어 낸 사랑 속에서 우리는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깨닫는다. 그는 누구보다 인간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무결함을 추구하는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흠결 있는 인간을 그리는 것도, 위태로운 주체에 대해 사유하려는 것도 모두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사람으로서 자신을 사유하고 흔들리지 않을 수 있도록 작가는 현실의 삶을 치열한 갈등으로 그려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