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겨울, 이연, 이충녕 추천
삶의 한복판에 멈춰 선
우리를 일으키는 철학의 힘
일본의 젊은 철학자 다니가와 요시히로는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삶에 고독과 철학, 이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명쾌하고, 즉각적인 것이 미덕인 시대에 ‘철학’만큼이나 거리 두고 싶은 분야가 또 있을까? ‘시간은 금’이기에 어렵고 모호해 시간이 필요한 것은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물러난다. 아, “3분 요약! 이것만 보면 됩니다”와 같은 제목의 영상이라면 다를 수 있다. 현대인은 무엇이든 손쉽게 이해하려는 욕구가 있다.
끈기와 지속적인 힘이 필요한 철학과 사유보다 자기계발과 숏폼 콘텐츠가 인기를 얻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욕구에 있다. 빠르고 간편한 것을 좇다 보면 점점 자신이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만 취하게 되어, 자기 고집과 독단에 빠지고 만다. 이로써 자기 안에 매몰되기 쉬운 이 시대에 더욱이 ‘철학’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모두 자기 자신만 신경 쓰고, 본인만 기분 좋은 세상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자기 의견이나 이미지를 신경 쓰기에 급급하다. 본인의 의견은 의심하지 않고 전문가에게도 자신만만하게 댓글을 달며, 심지어 유사과학을 믿는 사람이 엉터리 이론을 대며 ‘쯧쯧, 정보가 저리 부족해서야’ 하고 과학자를 바보 취급하기도 한다. 우리는 마치 타인이나 세상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린 듯 보인다.”(31~32쪽)
철학은 자신이 갖고 있던 편협한 사고에 균열을 낸다. 고집과 독단을 깨트리고 상상력과 지혜가 흘러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연다. 뿐만 아니라 모호한 학문이라는 오명과 달리, 시대가 직면한 문제와 갈등을 다뤄온 철학은 우리 삶 깊이 들어올 때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꾼다. 에픽테토스가 철학을 병원에 비유했듯이, 우리에게 철학이 필요한 이유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치료하기 위함이다. 평생 병이나 부상을 입지 않고 살 수 없는 이상, 지금 당장은 필요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있어야 하는 병원처럼 철학도 마찬가지다.
“가공식품처럼 쉽게 소비되는 정보에 익숙해진 현대인에게 철학은 점점 더 낯설고 어렵게 느껴진다. 우리는 깊이 사고하는 법을 잃어가고 있다. 저자는 철학을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도구로 소개한다. 정답을 찾으려 애쓰기보다 끝까지 고민해 보는 것, 때로는 불편한 질문을 품고 가는 것. 철학은 그렇게 우리가 잃어버린 사유의 힘을 되찾게 한다.” (추천사 중에서)
그런 의미에서 『연결되었지만 외로운 사람들』은 삶을 철학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시작점이 되어준다. 삶에서 느낀 불안과 고민들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바라보고 직면해 보자.
우리는 어쩌다 고독을 잃어버렸을까?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우리
‘모두가 병들었으나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는 시인의 말처럼, 현대인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문제들을 많이 안고 있다. 저자 다니가와 요시히로는 그중에서도 ‘고독을 잃어버렸다’는 점을 지적한다. ‘고독’이라고 하면 ‘외로움’을 떠올리기 쉽지만, 한나 아렌트를 비롯해 여러 철학자들이 이 둘을 구분 지어 사용했다. 외로움은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음에도, 타인에게 의존하고 싶어 하는 상태’지만, 고독은 ‘침묵 속에서 나 자신과 함께 존재하는 방식’이라고. 저자는 외로움에 시달리는 현대인이 되찾아야 할 것이 바로 ‘고독’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쩌다 외롭게 되었으며, 고독을 잃어버렸을까?
“여기서 우리가 잃어버린(잃어버리려 하는) 것은 ‘고독’이다. 사람들은 따분함을 견디지 못하고 자극과 커뮤니케이션을 갈망한다. 자기 자신과 함께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고독’이라는 말에는 자극을 원하거나 타인에게 우선 반응하려 하지 않고 홀로 보내는 시간의 중요성이 담겨 있다.” (144쪽)
밤낮으로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우리 모습을 돌아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시대는 ‘스마트폰 시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그 의존도가 점점 커져, 스마트폰 또는 태블릿 PC 등 스크린에서 눈을 떼는 시간은 하루 중 몇 시간 채 되지 않을 정도다. 거기에 더해서, 식을 줄 모르는 자기계발에 대한 열기는 우리가 고독할 틈 없게 만든다. ‘갓생’, ‘미라클 모닝’, ‘사이드 프로젝트’ 등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듯이, 현대인은 말 그대로 쉴틈 없이 일정을 채우고, 끊임없이 자신을 동기부여해 왔다. 그것이 ‘즐거워서’라기보다는 고요함 속에서 삶의 불안과 고민을 마주할까 두렵기 때문에, 짧고 강렬한 자극, 오락, 멀티태스킹 등 엉뚱한 곳으로 자신의 시선을 돌린 것이다. 그러는 동안 우리의 내면과 감정은 방치되었다.
고독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결국, 삶의 주요한 사건들에서 느낀 감정들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다가 깊은 우울감에 빠지기도 하고, 이따금씩 껍데기 같이 느껴지는 자신의 삶에 대해 깊이 회한한다. 저자는 이러한 현대인의 초상을 이 책을 통해 아프게 꼬집는다.
어떻게 고독을 되찾을 수 있을까?
나와의 대화를 시작하는 방법에 대하여
고독은 사람들 틈에서 나와 자기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한다는 점에서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누군가는 아이를 낳고 얻게 된 큰 행복을,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내고 나서 받은 큰 충격과 슬픔을 오롯이 느끼고 소화해야만 한다. 삶을 건강하게 영위하기 위해,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 필수적인 요소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일상에서 고독을 불러오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소개하는데, 그중에서도 심도 있게 다루는 방법은 다름 아닌 ‘취미’다.
‘취미’는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영역이자 수익이나 평판을 위해 하는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고립과 고독을 가능케 한다. 취미로서 무언가를 만들거나 기를 때, 우리는 그 대상과 들리지 않는 대화를 펼치는 것과 다름없다. 이 책에서는 글쓰기와 텃밭 가꾸기로 예를 드는데, 우리가 밭을 가꿀 때, 작물이 어떤 크기와 속도로 자랄는지 다 알지 못한다. 무사히 실한 열매를 맺을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기에 줄기와 잎을 살피고, 시행착오를 겪는다.
“우리는 창작을 통해, 즉 ‘뭔가를 만들고 뭔가를 키우는’ 취미를 통해 ‘자신’과 ‘타자’를 끊임없이 오가며 자기대화를 거듭해야 한다는 뜻이다. 고독 속에서 사고(자기대화)가 가능해지므로 취미는 곧 고독으로 이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210쪽)
“이때 우리가 만드는 ‘무언가’는 우리 앞에 ‘타자’(물음)로서 모습을 드러낸다. 어떤 것을 만들거나 키울 때 대상은 우리와 이어져 있으면서도 우리의 외부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시를 짓거나 수박을 키울 때 우리는 시와 수박에게 많은 질문을 받는다. 자신이 만드는 ‘무언가’가 자기에게 어떤 물음을 던지는지 헤아리는 일은 취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셈이다.” (211쪽)
즉, 우리는 취미를 통해서 우리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이 있음을 받아들이고, 불확실함이 주는 가능성을 기대하고 상상하게 된다. 단순하고 명쾌한 답을 좇던 방식에서 다른 삶의 방식을 취하게 되는 과정인 것이다. 이 밖에도 저자가 소개한 ‘고독’을 영위하는 방법들을 통해, 우리는 고집과 독단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어 한 걸음씩 성장하며, 곁에 있는 사람들과 유대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