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필연적인 내적 갈등, 꿈과 현실 사이 아슬아슬한 줄타기
빌헬름은 상인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는 빌헬름이 가업을 이어받아 집안을 더 크게 성장시키기를 원하지만 빌헬름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상업이 아닌 연극과 무대이다. 소설 전반에서 빌헬름은 연극배우라는 꿈을 좇다가도 현실에 부딪혀 꿈을 포기하는 듯 보이지만, 상인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 어느새 극단 사람들과 어울리는 등 꿈과 현실 사이에서 끝없이 고민한다. 이렇게 두 가지 길 앞에서 방황하는 빌헬름과 달리 그의 친구이자 매부인 베르너는 확실한 현실의 인물이다. 그는 가진 것들을 잘 활용하여 재산을 불리는 일에 관심이 많다. 베르너가 보기에 빌헬름은 비현실적인 일에 지나치게 가치를 두고 있는 친구이고, 빌헬름이 꿈을 포기하고 현실의 길을 선택한 듯 보이자 기뻐하기도 한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이상적인 삶을 추구하기도, 세속적인 삶을 영위하기도 한다. 때로는 매정하게 흘러가는 상황 때문에, 때로는 그저 욕심 때문에 자신의 오랜 꿈을 저버리기도 하지만, 꿈과 현실을 적절히 넘나들며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이들도 있다.
빌헬름은 소설이 전개되는 내내 두 갈래의 길 중 어느 길을 골라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이는 단지 빌헬름이나 소설 속 인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살면서 한 번쯤은 또는 생애 내내 시달리는 갈등이다. 우리는 꿈과 현실, 둘 중 과연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 어느 길로 가야 더 좋은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까? 작품 속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이 언젠가 우리가 마주할 선택의 순간,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괴테가 말하는 세상과 인간과 삶
괴테는 자신이 살아오는 동안 느꼈던 모든 것을 하나의 작품에 녹여 냈다. 인간 존재나 계급 차이에 대한 고찰은 물론이고 삶과 예술, 사회와 연극의 관계를 기회가 될 때마다 독자에게 일러 준다. 고전에 담긴 가르침이 오늘날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유효하게 작용하듯 여기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도 우리가 충분히 눈여겨볼 만한 어른의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 그중 특히 괴테가 들려주는 삶에 대한 통찰은 놀랍다.
소설의 후반부, 그사이 많은 일을 겪고 로타리오의 성으로 되돌아가던 빌헬름은 이전에 잠깐 마주쳤던 신부님을 다시 만난다. 자신이 그동안 헛되이 시간을 보냈다며 푸념하자 신부님은 답한다. “잘못 생각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기고, 우리 자신을 형성하는 데 눈에 띄지 않게 영향을 미칩니다.”(584쪽) 신부님의 말처럼 눈앞에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시간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겪었던 모든 일이 우리 각자의 삶에 켜켜이 쌓이고 있음을, 모든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성공뿐만이 아니라 실패도 학습하고 있으며, 실패는 인간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귀중한 삶의 자원이다. 이 외에도 연극에 빗대어 세상과 인간 군상을 묘사하기도 하고, “이성적인 판단은 본래 불편한 것”(584쪽)이라며 불편하다는 이유로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거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않는 사람들을 비판하기도 한다.
좋은 조언은 시대를 초월해 동일한 무게로 전해진다. 18세기의 괴테가 전하는 지혜를 남김 없이 흡수해 더 나은 삶을 위한 재료로 사용해 보기를.
‘마이스터’라는 이름으로
빌헬름 마이스터의 ‘마이스터(Meister)’는 대가, 선생, 스승이라는 뜻이다. 비록 소설 속 빌헬름은 누군가의 스승이 되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행착오와 혼란을 겪는 인물이지만,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우리에게 그는 충분히 스승이라고 부를 만한 존재다. 우리는 빌헬름의 성장 과정과 그가 만나는 아주 다양한 인물들을 관찰하며 나름의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빌헬름의, 베르너, 마리아네, 야르노 … 작품 속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입을 빌려 괴테는 작품 속에 자신이 얻은 삶의 지식을 남겨 두었다. 그러니 이만하면 괴테를 우리의 ‘마이스터’로 삼을 수 있을 듯하다.
빌헬름 마이스터의 이름으로 우리의 마이스터 괴테가 전한다. 지금 당장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매는 듯 보이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올바른 방향으로 잘 나아가고 있다고, 그 방황의 과정까지도 우리 삶에 필요한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