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과 시대에 출렁대는 신화와 설화의 ‘밑물결 철학’
한국의 역사적 고통을 소재로 한 소설로 한강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우리 정서를 표현한 K-pop, 우리가 즐겨온 놀이를 소재로 한 드라마, 우리 현실을 담아낸 영화, 우리 문화와 자연환경이 만들어낸 음식 등 한국의 문화에 세계 젊은이들이 열광하고 있다. 한편으로 한국의 현실은 여전히 사회적 모순이 집약되어 표출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주장이 다른 두 개의 광장이 펼쳐져 있고,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으며, 최고의 자살률과 최저의 출산률을 보이고 있다. 기후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나눠 가질 것인가, 사회 대전환을 위해 어떤 상상과 실천을 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논의는 요원하기만 하다. 그러나 그에 대한 극복 의지 또한 다이내믹하게 펼쳐진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어떤 철학을 품고 삶을 살아가며 죽음을 맞았기에 이토록 ‘다이내믹’한가. 저자는 이에 대한 해답을 신화와 설화에서 찾아냈다. 저자는 한류로 한국 문화에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지만 정작 우리 안에 깊숙이 자리한 철학을 스스로가 모른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며, 그 까닭을 우리 “철학이 눈부시기에 더욱 그렇다”고 말한다. 또한 ‘한국인의 눈부신 철학’은 “인류 공동의 유산”이며, 여기에서 “새로운 인류 문명을 열어갈 상상력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한국인이 수천 년에 걸쳐 소통해온 신화와 설화에는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세계관이 녹아들어 있다. 또한 신화와 설화의 ‘밑물결 철학’은 우리 역사와 삶에 깊숙이 영향을 끼쳐왔다. 저자는 신화와 설화의 문학작품, 곧 한국인 가슴에서 생동하는 서사와 그에 담긴 눈부신 철학을 이 책에서 세밀하게 탐구하고 있다. 저자는 “강이나 바다의 바닥을 흐르는 물결을 저류(低流)라 하듯이, 바깥바람 영향을 곧장 받아온 철학의 ‘겉물결’ 아래 깊은 곳을 흘러온 ‘밑물결’이 있다”며 바로 이곳이 “한국인 대다수가 긴긴 세월 몸으로 살아간 철학이 반짝이는 곳”이라고 말한다. 그 밑물결에서 길어 올린 눈부신 철학은 인류세의 위기를 넘어설 씨앗을 품고 있다고 강조한다.
인류세의 위기를 넘어설 철학의 씨앗
저자는 “자기 안에 숨어 있는 금강석을 모르는 한국인들은 물론 한국 문화에 다가서는 지구촌 사람들에게 길라잡이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이는 “한국 문화의 저류에 담긴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지구촌의 인류가 막다른 문명의 골목을 벗어나 새로운 문명을 열어가는 길에 영감을 줄 수 있으리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긴 역사 과정을 통해 민중들 서로가 송신자와 수신자가 되어 이어온 신화와 설화에는 ‘인간적 성찰’과 ‘사회적 실천’이 담겨 있다. 민중들은 끊없는 억압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새로운 세상을 소망해왔기 때문이다. 한국사의 밑물결로 연면히 이어온 〈단군신화〉의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는 신시의 꿈은 민중적 위기를 맞은 제국주의 침탈기에 동학의 인내천 철학과 혁명적 실천,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으로 피어났다. 21세기 들어서 세계인이 격찬한 촛불혁명이 거듭 일어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저자는 “사람보다 자본, 연대보다 경쟁을 중심에 둔 사회체제의 어둠이 아직 시커멓게 깔려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딴은 그 어둠이 짙기에 서로가 서로에 보내는 응원이 한결 빛날 터”라며 희망의 긍정 또한 잊지 않는다.
저자는 책을 닫는 글에서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의 철학이 ‘사람이 바로 문학’이라는 명제와 통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동학은 한국인의 밑물결에서 길어 올린 사상이기에 한류의 철학적 기반으로 삼아도 손색이 없다”며 “그 선구적 사유를 평화와 생태라는 시대적 과제에 맞춰 숙성할 과제는 우리 시대 민중의 몫”임을 강조한다. 한국인의 밑물결을 이룬 철학은 그 잠재력, 다이너마이트를 아직 다 터뜨리지 못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글을 맺는다.
“산과 하늘을 사랑한 ‘문학’은 인류세의 위기를 넘어설 철학의 씨앗을 품고 있다. 산과 하늘 그리고 사람까지 모두 우주의 표현이라는 우주적 사유가 그것이다. 현대 과학과 소통을 통해 한국 철학사의 밑물결이 사나운 겉물결을 뚫고 용솟음친다면 인류 문명을 새롭게 열 눈부신 흐름이 탕탕하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