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카리야 카이텐의 「조선선교사」는 삼국시대부터 근대 초기까지 비문 등 모든 자료를 모아 서술한 통사적 성격의 책이다. 선승과 교학승(敎學僧) 들을 총망라하여 서술한 인물사 중심의 한국불교사인데, 특히 한국 선 사상사에 대하여 많은 비중을 두어서 쓴 책이다. 아직까지 한국 선종 사상사에 관한 고전적인 책으로는 이 책을 능가할 만한 책은 없다고 해도 아닐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감사에서 “권상노 박사와 이능화 선생의 지도를 입음이 컸다”라고 말하고 있으며, 서문 끝에서는 “다만 바라는 바는 佛日이 다시 海東(한국)의 하늘에 오르고, 祖月(조사선의 달)이 길이 靑丘(우리나라)의 밤을 비추는 것이다”라고 기원하고 있다. 또 이 책 맨 끝 페이지 결론에서는 “아아, 폐불 훼석하기를 무려 오백 년이려니 李氏 왕조는 이제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滅하는 것 같으면서도 滅하지 않았고, 쓰러질 듯하면서도 쓰러지지 않은 조선불교는 지금도 사찰이 1300여 개이고, 僧尼가 7100여 인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불교는 종국 暴정에 의하여 멸망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누카리야 카이텐에게는 이 책 이전에, 인도, 중국 선종사를 다룬 「禪學思想史」(상, 하 2권, 1923년, 大正 12. 玄黃社, 일본)가 있는데, 매우 방대하지만, 이 역시 중국 선종사 연구서로서는 거의 효시가 되고 있는 책이다. 그는 이 책을 저술한 지 4년만인 1934년에 도쿄에서 강연하던 도중, 뇌일혈로 쓰러져 그대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8세.
「한국선교사(원저명: 조선선교사)」를 번역한 정호경(1904-1990) 스님은 지금은 아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1960년대, 70년대는 널리 알려진 강백(講伯)이다. 1913년 9세에 금산 보석사로 입산했고, 1914년 충북 보은 법주사에서 사미계를 받았다. 1922년 경성 보성고보(보성전문학교)를 졸업했고, 1929년에는 중앙불전(동국대 전신)을 졸업했다. 1934년 일본 대정대학(大正大學) 불교학과를 졸업했다. 그 후 통도사 강주, 법주사 강주, 계룡산 동학사 강원 등에서 강주를 역임한 원로 강백이다.
이 책은 1978년 1차 간행되었는데, 동학사에서 정호경 스님으로부터 강원 과정을 마쳤으며, 1977년 전강을 받은 경월 일초 스님이 호경(湖鏡) 강백(講伯)의 학은(學恩)에 보답하는 의미에서 재발행한 것이다.
일초스님은 간행사에서 “소납(小納)은 호경(湖鏡) 강백(講伯) 스님으로부터 대교(大敎)를 수학하는 등 많은 학은(學恩)을 입었으며, 이어 1977년에는 전강을 해주셨습니다. 그 학은(學恩)에 보답하기 위하여 노사(老師)의 저서, 역서를 찾던 중 조선선교사가 호경(湖鏡) 강백(講伯) 스님에 의하여 번역되었다는 것을 알고 47년 만에 재간하게 되었습니다. 노사(老師)의 학은(學恩)에 10분의 1이라도 보답할 수 있음을 감사하며”라고 간행사에서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