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동고분 축조와 일본열도
가야사 국제학술회의는 국내외 연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가야에 관한 연구성과를 발표하고 토론하는 의미 있는 자리다. 지금까지 이어온 가야사 국제학술회의는 국민에게는 가야 연구성과를 알리고, 연구자들에게는 가야 연구의 구심점을 만드는 동시에 연구의 방향성도 제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가야사 국제학술회의 주제는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1주년을 기념해 「김해 대성동고분군과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은 사적으로, 금관가야의 소재지인 김해지역 중심부에 위치한 금관가야의 지배층 무덤이다. 1990년에 경성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학술조사가 처음 시작되었다. 1∼5세기대에 해당하는 대성동 고분군은 전기 가야의 중심 고분군으로 가야의 성립과 전개, 성격, 정치, 사회 구조를 해명하는데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유적이다.
가야인이 서술한 가야의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가야사 연구에 많이 활용되는 문헌 사료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그리고 중국, 일본의 기록은 가야 외부 사회의 구성원들이 쓴 단편적인 기록물을 기초로 하고 있기에 가야고분군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는 중요하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가야고분군은 김해 대성동 고분군, 함안 말이산 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합천 옥전 고분군, 고성 송학동 고분군, 고령 지산동 고분군 그리고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으로 모두 7개 지역의 고분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김해 대성동 고분군은 가야의 가장 이른 시기의 중심 고분군으로 ‘한반도 고분문화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가야의 출발은 대성동고분군의 출현과 궤를 함께 한다. 대성동고분군의 존재 없이는 가야사자체를 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학계에서는 대성동고분군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다. 以下는 대성동고분군 발굴조사에 의해 획득한 知見들이다. 즉 대성동고분군의 축조, 대성동고분군의 존재하는 시기와 그렇지 않은 시기의 가야의 성격과 영남지역 諸정치세력의 추이, 주변지역의 동향, 특히 일본열도의 정세는 판이하다. 이 점들에 대해 파악하기 위하여 크게는 전기 가야와 후기 가야로 대별하여 접근하는데, 이의 명확을 기하기 위하여, 전기 가야와 후기 가야의 획기는, 후술하듯이 서력 400년 고구려군의 南征으로 촉발된 金海 大成洞古墳군의 築造中斷에 둔다. 즉 대성동고분군이 존재하는 시기와 그렇지 않은 시기가 기준이 되는 것이다.
김해 대성동고분군 연구를 집중적으로 다루게 될 이번 학술회의가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더욱 활발하게 연구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문헌사학과 고고학의 상호 이해와 교류, 융합이 요구되는 가야사 연구의 특성에 맞는 새로운 방법론 도출 등 진일보한 학술 성과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