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작금이나 간신들은 겉으로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달콤한 말만 뱉어내며 공손하게 머리를 숙여 문무백관과 황제의 눈을 가리고 귀를 어둡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돌아서면 모두가 정적이었다. 간신들은 남다른 무기를 갖고 있었다. 정적을 제거하는 무기는 칼이나 활, 창과 같은 쇳덩이가 아니었다. 간신들은 부드럽고 달콤한 입술을 사용했다. 중상모략, 음해, 음흉, 아부와 아첨과 떠받들기, 거짓말, 이간질, 질투, 증오, 교활, 영악, 핍박, 간교한 지략 등 세상에 펼쳐진 나쁜 것은 모두 그들의 무기였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 무기를 동원하면 안 되는 것이 없었다. 아무리 많은 정적이라도 그의 천악(仟惡; 천 가지 악)의 술수에 걸려들면 쓸쓸한 낙엽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양귀비 시절에는 어떠했는가? 그리고 작가는 그때를 빌어 오늘도 다름이 없다는 것을 전하고 싶은 것이다. 권력에 눈이 멀어 인간으로서는 하지 말아야, 하지 않아야 할 짓을 서슴지 않고 행하는 그들을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말을 들어보자.
양귀비란 단어를 떠올리면 사람보다 꽃이 먼저 떠오른다. 그만큼 많이 알려진 이름이다. 한때는 꽃처럼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 양귀비를 닮았다고 한 적이 있다. 얼마나 예뻤으면 한 나라의 통치자가 그녀의 치마폭에 푹 빠져 탕아처럼 되었을까 싶다. 그 순간 꽃잎에 착 달라붙어 꿀을 빠는 벌, 나비처럼 간신배들이 밀려들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간신배는 있었다. 그들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때론 불나방이 되어 섶을 지고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당나라 현종 때만 간신이 득실거렸던 것만은 아니다. 아마도 태초부터 간신들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간신들이 들끓었다. 간신들은 권력의 정점인 제왕의 눈을 멀게 하고 이해득실만 따지려 들었다. 또한 충신을 표방한 얼굴 두꺼운 간신배의 등쌀에 올곧은 자들이 무수히 희생되었다.
이 책은 그런 간신들의 생리와 몰락을 담아내고 있다. 간신들이 설쳐댈 수 있었던 것은 통치자의 무사안일적인 정신 상태와 통치 방식 그리고 무능함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당나라의 치세가 연속되는 가운데 개원의 치(開元의 治)를 실천한 현종의 안일함에 간신들은 독버섯이 되어 나라를 망치고 있었다. 만인지상의 눈과 귀를 가리고 일인지하의 세상을 꿈꾸는 자들이 바로 간신이었다.
구밀복검(口蜜腹劍)의 간신 이임보가 있었다. 그는 특유의 꿀단지를 꿰찬 채 현종의 눈을 가렸다. 그를 제거하자 또 다른 간신이 등장한다. 양소라는 자였다. 그는 정치에는 문외한에 불과한 불한당이었다. 현종이 양귀비와 사랑놀이에 빠져든 틈새의 후광으로 입궐하여 나라를 좌지우지하다 결국 망국의 길로 치닫게 한다.
그런 치열함과 어지러운 정국 속에 황실도 무사할 수 없었다. 상관완아는 살아남기 위해 양다리를 걸쳤다가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상관완아의 꾀주머니가 아니었다면 중종의 복위도, 상황 이단의 정치 참여도, 성공적인 거사도 없었을 것인데 너무 큰 공을 세운 자는 죽어야만 했다. 그것이 황실의 불문율인 것을 그녀의 머리는 미처 거기까지 돌아가지 않았던 것이다. 천하를 한 손에 움켜쥐고 자자손손 영화(榮華)를 누리려던 과욕의 결과이기도 했다.
세인의 입처럼 간사한 것은 없고, 세인의 눈처럼 명확한 것도 없으며, 세인들의 노래처럼 무서운 것도 없다. 세인을 외면하는 순간 통치자의 목숨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또는 갑작스레 밀어닥쳐 자신은 물론 씨족의 씨를 말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권력이나 물질도 항상 마음을 자제하고 경계하여 분수에 넘치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권세와 명리는 겉보기에 매우 화려해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매우 더러운 것이다. 권모술수는 정도가 아니므로 처음부터 싹을 자르고 차라리 모르는 것이 고상한 것이다.
사람에게는 두 갈래의 길이 있다. 사욕의 길과 도리의 길이다. 사욕의 길은 필히 재앙을 부르고 파멸을 가져오며, 도리의 길은 복되고 삶을 보람 있게 한다. 그러므로 통치자는 반드시 도리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끝없이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며 이를 얻는 것을 최대의 즐거움으로 여긴다. 그러나 벼슬길의 풍파(宦海風波)라는 말이 있듯이 명예와 지위의 이면에는 무한한 고난이 따르고, 아침에도 저녁의 재앙을 예측할 수 없다. 현종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양귀비와 그의 사촌 오빠인 양소도 명예와 부를 쌓더니 한날한시, 같은 시간에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비록 중국의 역사지만 역사를 뒤돌아봄으로 오늘의 명철한 판단과 사욕을 버리고 백성을 두려워하는 통치자, 정치인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고 작가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