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없던 문』의 공통 한 줄은 처음에 ‘문’보다는 ‘방’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런데 김유라 작가도, 엄정진 작가도 문을 매력 있게 활용하는 이야기를 개발했다. 방에 드나들 수 있는 문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어떻게 보면, 방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기도 하다. 고민 끝에 이야기를 수정하지 않고, 공통 한 줄과 책의 중심을 문으로 가져가기로 했다.
문이 닫혀 있을 때에는 그 문 너머의 공간이 어떠한 곳인지, 누구 혹은 무엇이 있는지 없는지,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다. 문이 열리는 순간에 느낄 설렘, 기대, 호기심, 긴장감, 두려움, 걱정 등. 이 감정은 우리가 처음 읽을 책과 마주할 때와 같은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없던 문』을 열 때의 감정은 다양할지라도, 부디 많은 분께서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없던 문』을 닫았으면 한다.
하루에 오백, 계약하시겠습니까
김유라 작가는 소설, 웹툰, 영화를 넘나들며 글을 쓰는 만큼, 「하루에 오백, 계약하시겠습니까」에서도 탁월한 묘사와 장면 연출을 선보인다. 작가가 깔아 둔 활자를 따라 걷다 보면, 독자는 어느새 머릿속으로 꽤 잔인한 그림을 그리게 된다. 이런 기괴한 장면이 처음 등장할 때, 우리는 「하루에 오백, 계약하시겠습니까」가 일상 판타지가 아닌 호러 장르 작품임을 명백하게 깨닫는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문장들을 보면, 독자들에게 호러 소설의 묘미를 전하고 싶다는 작가의 의지를 강하게 느낄 수 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영상과 비교했을 때, 소설에서 공포심을 느끼게 하기는 쉽지 않다. 이에 김유라 작가는 잔혹하고 끔찍한 장면을 묘사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 상황에 빠져 버린 인간의 감정과 심리를 영리하게 활용하여, 독자들 내면에 있는 기폭제를 건드린다. 이 주인공이 겪는 일들이 결코 작품 속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방 안으로 들어가지만 않는다면 하루에 500만 원을 번다는 설정과 방 안의 광경이 계속 바뀐다는 설정의 조합도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면 꽤 흥미롭다. 주인공이 단순한 계약 조건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가정이 만드는 긴장감이 작품 기저에 깔린다. 이를 바탕으로 호기심과 돈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인간의 심리를 드러내는 표현이 차곡차곡 쌓인다. 비슷한 감정을 한 번이라도 느껴 봤을 독자를 자극하여, 이야기에 한껏 몰입하게 돕는다. 빚을 떠안고 ‘나’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세운 점 역시 독자의 감정 이입을 유도한다.
사건이 진행될수록 주인공의 심리는 극에 달한다. 그에 따른 주인공의 행동도 점차 변해 간다. 독자는 강인했던 인물이 돈이나 유혹에 흔들릴 때, 둘 중 무언가를 선택하려 할 때 그리고 끝내 그 모든 것에 졌을 때 어디까지 이르는지 지켜보게 된다. 이 과정에서 독자들은 누구보다 공감할 수도 있고, 그저 관망할 수도 있다. 어떤 태도로 작품을 따라왔는지 상관없이, 작품의 엔딩을 보면 무언가로부터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느낀다. 이야기는 끝났지만, 독자는 질문에 계속 빠져 있을 수밖에 없다. ‘나는 과연 어떠한 선택을 했을 것인가?’ 자기 삶과 이야기를 비교하고 생각하게 하여, 독자 스스로 답을 찾게 열어 둔다.
어둠 속의 숨바꼭질
많은 사람이 과거로 돌아가는 상상을 자주 한다. 그 때문인지 다양한 콘텐츠들이 나오곤 한다. 만약 성인이 지금의 몸 그대로 어린 시절의 특정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둠 속의 숨바꼭질」을 처음 만났을 때, 그러한 상상의 폭을 더 확장할 수 있었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에 실종되었던 오빠와 100퍼센트 같은 아이를 발견하고 그와 뒤쫓는다. 그렇게 아이를 따라서 낯선 공간으로 들어갔는데, 어린 시절에 살았던 곳에 도착한다.
이야기의 도입부가 이러하여, 「어둠 속의 숨바꼭질」의 시공간 배경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의 분위기를 닮아 있다. 그런데 엄정진 작가는 그 시대를 온전히 갖고 오지는 않았고, 등장인물과 이야기에 맞춰 필요한 부분만 챙겼다. 이야기상으로도 중요한 대목에서 시공간을 왜 이렇게 구성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그렇다고 또 지금보다 더 뒤섞이고 불분명하게 시대상이 들어왔다면, 인물의 설정이나 이야기 전개에 힘이 떨어졌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가 적정 선을 잘 잡아냈다고 볼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아련함을, 누군가에게는 독특함을 주면서 이야기에 더 매료될 수 있도록 말이다.
엄정진 작가의 이야기적 강점과 취향은 결말부에서 또 한 번 볼 수 있다. 작가는 「어둠 속의 숨바꼭질」에서 판타지 장르가 할 수 있는 엔딩을 취했다.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엔딩이지만, 오히려 독자에게 일종의 위로와 희망을 준다. 답답한 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출발을 꿈꾸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공감대를 형성해 낸다. 뒤이어 그런 상상을 하면서까지 이 삶을 살아 나가려는 우리 모두가 그 자체로 대단함을 서로 인정하고, 인정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인생을 사는 데에 목적과 이유를 찾으면 당연히 좋지만, 그것을 찾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없더라도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 한다. 살아갈 그 힘을 어떠한 형태로든 찾고 얻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매드앤미러 프로젝트의 또 다른 재미!
모든 작품을 잇는 매드앤미러의 세계관을 소개합니다.
[인류는 과거 유리 매미의 수호 아래 번영을 누렸다. 매미는 온 세상의 ‘악’을 거울 조각으로 이루어진 자기 날개에 가두어 해독하였다. 그러나 ‘악’에 잠식당한 타락한 사냥꾼들이 유리 매미의 날개를 파괴하였고 세상은 불안, 혐오, 폭력으로 가득 찼다. 세상을 정화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부서진 유리 매미의 날개 조각을 모아 매미를 부활시키는 것뿐이다.
“어둠을 비추는 거울 조각들을 찾아라. 거울은 거울이 아닐 수 있음이라.”]
매드앤미러 세계관에 등장하는 ‘거울 조각’은 바로 시리즈의 각 작품입니다. 텍스티는 독자들(일명 ‘거울 조각 조사단’)이 그것들을 찾고 수집할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각 조각을 발견한 독자들이 감상하고, 소개하고, 대화하며 이야기를 확산시키고 그 힘이 크게 모이면 유리 매미가 힘을 되찾아 다시 세상을 정화해 줄 것입니다. 텍스티가 그 선봉대에 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