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불교는 한국불교사에서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첫째, 조선의 건국과 함께 국가통치이념의 전환이 계기가 되어 지배층의 불교에 대한 사상적 탄압과 함께 독선적인 성리학적 가치체계에 기초한 통제로 불교계가 사회경제적 위축을 가져왔다. 둘째, 지배층의 불교탄압은 불교수용 이후 고려시대까지 융성했던 선교학을 중심으로 한 불교사상과 수행이 쇠퇴했고, 그 성숙이나 발전을 기대할 수 없었다. 셋째, 승가의 불교사상과 수행은 쇠퇴했지만, 신앙은 백성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저변화되었다. 전통민간신앙과 융합된 불교신앙이 수탈과 착취가 연속되었던 조선의 백성들을 위로해 주었다. 더욱이 청허 휴정의 염불(念佛)·송주(誦呪)와 같은 수행법의 인정은 승속을 초월하여 불교가 민간으로 다가가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넷째, 조선불교계는 탄압과 수탈에도 불구하고 ‘복국우세(福國祐世)’라는 불교본연의 정신을 현실 속에서 발휘하였다. 이른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속에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승가의 본분을 다하고자 하였다. 불살생(不殺生)이라는 승가 본연의 계율에 얽매이지 않고 왕조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진력했고, 도탄에 빠진 백성을 위로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조선불교가 이전 시대와는 달리 그 사상과 수행이 뒤처진 것은 사실이고, 원효나 지눌과 같은 인물이 출현할 수 없었던 환경이었던 점은 확실하다. 그러나 조선의 불교는 조선의 흙과 바람에 적응하고 곤궁을 극복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니고 있었다. 불교계의 물러서지 않는 불심(佛心)과 수행력은 조정과 지배층의 오랜 탄압과 수탈, 착취를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으며,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제할 수 있었다. 더욱이 폐허가 된 불교 사상과 신앙이 청허 휴정과 그 후손들의 지속적인 노력에 의해서 재건되고 중흥되었다. 때문에 조선시대 불교사는 이전 시대의 불교가 지닌 개성과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을 통해 조선불교의 정체성을 확립한 것이다.
이 책이 조선불교사의 공백을 채울 수 있고, 그 본질과 정체성을 규명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