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이야기는 찬영이네 가족의 혼란스러운 현실에서 시작됩니다. 무책임하고 겁 많은 아빠, 빚더미에 올라타고도 책임을 회피하는 엄마, 자신의 실수를 거짓말로 덮으려는 아들 찬영이.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의 끝에 선 이 가족은 마치 인생 리셋 버튼처럼 등장한 ‘야반도주’라는 이름의 이사업체와 계약을 맺습니다.
“새로운 삶을 설계해 드립니다. 아무도 모르게 이사해 드립니다.”
찬영이가 발견한, 손톱만 한 스티커 속 기묘한 문구는 찬영이네 가족의 운명을 바꾸는 시작이었습니다.
새벽에 이뤄진 이사 후, 그들이 도착한 곳은 중산층 이상의 삶을 꿈꾸게 만드는 고급 빌라 단지. 짧은 노동으로 고수익을 얻고, 여유로운 삶을 즐길 수 있는 환경 속에서 가족은 처음엔 희망과 안도에 들뜹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 새로운 삶의 이면에 드리운 문제점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찬영이는 과거를 완전히 잊지 못한 채 옛집을 방문하고,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또 다른 가족이 자기 집에서 살아가고 있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합니다. 이 가족은 누구이며, 이 모든 일을 기획한 ‘야반도주’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가족의 우여곡절을 통해 던지는 삶의 질문
『가짜 가족』은 ‘인생 리셋 버튼’이라는 매력적인 환상을 통해 현대인의 욕망과 책임 회피를 풍자합니다. 가족은 가짜의 환상에 기대어 새로운 삶을 살아가지만, 그 과정에서 직면한 위기는 진정한 자신과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이귤희 작가는 찬영이네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한발씩 나아가며 실수를 극복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특히 가족의 변화를 이끄는 주체를 어린이로 상정해, 어린이 독자의 시선으로 삶의 변화를 경험하게 하고, 더 나아가 성인 독자에게도 자신만의 ‘진짜 삶’을 선택할 용기를 북돋웁니다. 이귤희 작가의 『가짜 가족』은 진짜와 가짜의 경계에서 당신에게도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지금 당신의 삶에 안녕한가요?’
가짜 인생을 선택한 가족에게 닥친 진짜 위기는?
작가는 찬영이 가족이 리셋 버튼의 착각에서 깨어나 인생의 실수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보여줍니다. 회복하기 어려울 것 같았던 상황도 한 발씩 내딛다 보면 길이 보이지요.
책표지에서 ‘가짜 가족’이란 제목 아래 서 있는 가족은,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가족인 찬영이네입니다. 하지만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는 삶을 사는 가족, 잘못된 것을 직감하고도 이전 삶을 책임지고 싶지 않아 계속 잘못된 생활을 이어나가는 가족이야말로 가짜 가족이 아닐까요? 이런 모습은 비단 가족의 형태만이 아닌 개인이나 집단에서도 흔히 발견됩니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가짜에 기댄 삶이 아니라 자기만의 진짜 삶을 살아 보게 하는 힘을 전합니다.
전에 볼 수 없던 새로운 소재의 과감한 사용
이귤희 작가는 흔히 ‘게임을 리셋하듯’ 자신이 한 일이나 살아온 방식에 대해 책임지려 하지 않는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는 이야기를 선보입니다. 그는 그리스 비극 시인의 명언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 구조와 지극히 한국적인 표현을 조합해, 사람의 도리와 삶의 태도를 심도 있게 탐구합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행동이나 태도를 비판할 때 흔히 사용하는 표현, ‘인두겁을 쓰고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지?’에서 ‘인두겁’은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상징적 소재로 등장합니다. 또한, 작가는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다’라는 명언을 기반으로, 허투루 인생을 낭비하는 사람들과 대조적으로 그 삶을 간절히 원했던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풀어냅니다.
이러한 상상은 이귤희 작가의 머릿속에서 정교하게 다듬어진 이야기가 되어, 독자가 한 번 손에 잡으면 쉽게 놓을 수 없는 흥미진진한 작품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이경석 작가만의 독특한 이미지 앵글 덕분에 이야기는 더욱 짜릿한 판타지 공간과 연결되어 흥미가 배가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