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의 교육 문제를 성찰하기 위한 소중한 지혜를
서당 교육의 전통에서 모색하다
일곱 살부터 15년간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고,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훈장’ 한재훈이 쓴 《서당 공부》가 출간되었다. 《서당 공부, 오래된 인문학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10년 전에 출간돼 많은 사랑을 받았던 책을 새롭게 손보고 다듬어 재탄생한 책이다.
저자는 초등학교 입학통지서를 받고 학교가 아닌 서당으로 가게 된다. ‘사람 되는 공부’를 하려면 서당 공부가 적합하다고 판단한 아버지의 권유로 서당과 인연을 맺게 된 것. 그로부터 15년간 전통 한학을 엄격하게 배우게 된다.
이 책에서 저자는 나고 자란 서울을 떠나 남녘 서당에 ‘입학’한 사연부터 서당에서 공부한 내용과 서당의 교육 방식,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특별한 경험담을 풀어놓는다. 이 기록은 단순히 서당이라는 ‘대안 교육’을 받은 한 개인의 경험담이 아니다. 저자가 공부했던 방식의 전통적인 서당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을 희생해가며 서당의 전통을 이어가고자 하는 스승도, 고매한 학문 정신을 이어받고자 하는 제자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사라져버린 전통교육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다. 아울러 저자는 지금의 황폐화된 교육 현실을 성찰하고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는 데 참고가 될 만한 소중한 지혜를 서당 교육에서 건져내 우리에게 전달한다.
“서당은 현실성이 결여된 과거의 유산임에 틀림없습니다. 또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교육 시스템에 비추어보면 서당은 아무런 쓸모도 없어 보입니다. 그곳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방법도 답답하기 짝이 없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서당’을 이야기하는 까닭은, 이미 없어져버린 서당을 통해 그 안에 스며 있는 소중한 가치를 음미하고, 그러한 가치를 통해 오늘 우리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결의 단초를 찾아보고자 함입니다.”_머리말 중
서당의 커리귤럼
우리는 서당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역사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주는 몇몇 장면이 우리가 알고 있는 서당의 전부일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서당의 교육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그것은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서당에서는 『사자소학』으로 공부를 시작한다. 글공부의 시작은 앞으로 쌓아갈 지식의 올바른 방향을 잡고, 몸이 올바른 방식을 자연스러워하도록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다. 그런 점에서 『사자소학』은 관계윤리를 중시하는 전통교육의 마중물 역할을 한다. 다음 단계로 『추구』를 배우는데, 주변 사물들의 이름과 상태, 사물과 자연의 이치를 다룬다. 우리 전통교육이 어떠한 바탕에서 이루어졌는지를 커리큘럼을 통해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글공부가 한 단계 질적 도약을 할 무렵 『소학』을 배운다. 『소학』은 앞의 책들에 비해 훨씬 구체화되고 심화된 윤리적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 책을 공부한 뒤 본격적으로 사서삼경을 배우기 시작한다.
성독, 낯선 글과 친해지기
서당 공부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성독과 암송이다. 서당에서는 하루 5~6시간 동안 그날 배울 문장을 100번 읽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것도 눈으로만 읽는 묵독이 아니라 소리 내어 읽는 성독을 최소 100번을 해야 글이 온전히 내 것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성독이란 무작정 소리 내어 읽는 것이 아니라 장단과 강약이 들어간 가락을 띠면서 읽는 것이다. 글을 읽는 과정에서 글의 의미와 소통하면서 갖게 되는 흥취의 정도를 소리에 실어 표현한 것이 성독인 셈이다. “같은 내용을 100번 소리 내어 읽는 성독은 결코 정보를 빠르게 저장하려는 방식과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천천히 글에 다가가서 느끼고 흠뻑 젖으려는 방식입니다.”
암송, 글의 속뜻에 다가가기
서당에서 암송을 중시하는 이유는, 문리가 트이는 주요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문리가 트인다는 의미는 글이 가지고 있는 결을 읽고 느낄 줄 아는 상태를 의미한다. 마치 목공예가가 수천 수만 번 나무를 만지고 다듬으며 나무의 결을 느끼듯이 100번 성독하면서 글의 결을 읽어내는 안목을 기르기 위한 반복 훈련인 것이다.
암송은 암기와 다르다. 암송은 단순히 문장을 외우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암기를 위해서라면 굳이 100번을 읽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암송을 하면 문장을 외우는 것을 넘어 글의 의미를 이해하는 토대를 다질 수 있습니다. 글의 의미에는 문장을 통해 알 수 있는 표면적인 의미와 문장 이면에 숨어 있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굳이 100번을 읽어서 암송하게 하는 것은 표면적인 의미는 물론이고 그 속뜻에까지 다가가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속뜻에 다가가는 날이 오늘일 수도 있고, 다음의 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암송한다는 것은 다음의 그 언젠가에 대한 불씨를 내 안에 보존하는 공부 방식입니다.”
인간관계의 정수를 배우는 ‘계단 꼴 구성’
서당 교육에서 또 하나 주목해볼 내용은 다양한 연령대가 한 반에서 공부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를 두고 ‘계단 꼴 구성’이라고 이름 붙인다. 동년배끼리만 생활하는 공간은 초중고 교실밖에 없다. 게다가 학교는 1년 단위로 학급 구성원이 바뀐다.
한번 인연이 맺어지면 막내부터 제일 큰 형님들까지 십 년 이상을 한 공간에서 지내야 하는 서당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이 매우 많다. 서당에서는 사회적 역할을 입체적으로 배울 수 있다. 아랫사람도 윗사람도 되어보고, 중간 위치에 서보기도 하면서 상황과 처지에 맞는 올바른 처신과 도리를 배우게 된다.
‘계단 꼴 구성’은 학동들 간의 상호보완적인 학습이 이루어지는 효과도 있다. 서로 수준이 다른 학동들이 한 방에서 공부하디 보니 서당 방에는 높은 글과 낮은 글이 한데 굴러다닌다. 후배는 선배들이 읽고 토론하는 높은 글을 얻어들으면서 앞으로 자신이 공부할 내용과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선배는 후배들이 읽고 외우는 낮은 글을 봐주면서 예전에 배운 글을 충분히 소화하는 기회를 자연스럽게 갖게 된다.
꼴찌가 없는 서당의 평가 방식
서당의 평가방식도 귀 기울여 들을 만하다. 서당에서 치르는 시험은 승자와 패자가 있는 경쟁의 장이 아니다. 서당에서는 선생님 앞에서 배운 글을 외는 것을 ‘강을 해 바친다’고 한다. 강은 하루 단위의 일강, 열흘 단위의 순강, 월 단위의 월강, 1년을 마무리하는 총강으로 나뉜다. 서당의 강은 일등부터 꼴찌까지 등수를 매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각자의 수준을 파악하는 데 목적이 있다. 1년에 한 번 총강에서는 장원을 뽑아 함께 축하하고, 장원은 모두가 먹을 음식을 낸다. 서당의 시험은 이처럼 꼴찌가 없으니 누구도 좌절할 일 없는 잔치로 마무리된다. 저자가 공부한 초동서사에서는 그날그날 밑글을 외는 정도였지 순강, 월강, 총강은 없었다고 한다. 이는 공부란 자율적으로 보완하고 관리해가는 것이지, 평가를 전제로 한 시험을 치르기 위해 공부하는 타율적 방식을 지양한다는 의미가 있다. 공부에 개입할 최소한의 타율적 구조조차 용납하지 않는 공부의 근본정신을 읽을 수 있다.
여름 공부와 겨울 공부는 달라야 한다
저자는 전통학문의 바탕 위에 현대학문을 더하고 싶어 대학입시에 도전한다. 노량진 입시 학원에서 수험생 생활을 시작한 저자가 특히 힘들어한 것은 ‘시간표’였다. 일찍이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서양의 근대 그 자체가 바로 감시의 체계요 처벌의 체계”라고 주장하면서 그 사례로 시간표에 주목한다. 공교육 체계 안에서 시간표에 길들여진 이들에게 시간표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하지만 저자는 시간표가 권력으로 작동해 학생들을 배움으로부터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서당에서는 시간을 어떻게 분배할까? 서당에서는 시간 배분에 대해 대강의 울타리만 있을 뿐 대체로 자율적으로 편성된다. 개인의 신체 리듬에 따라 스스로 조정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서당에서는 여름에 하는 공부와 겨울에 하는 공부가 다르다. 여름에는 방 안에서 하루 종일 경전을 읽고 외우는 공부는 삼가고 시문을 읽거나 한시 짓기를 주로 한다. 숲속을 찾아가든 계곡에 앉아 발을 담그든 어디서든 시 한 수만 지어 제출하면 된다. 반면 겨울에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글공부에 주력한다.
이 책 덕분에 우리는 그간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서당에 대해 세세하게 알게 되었다. 특히 탁월한 스승으로서의 삶을 살았던 공자와 퇴계 이야기를 통해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비로소 서당은 낡은 문화유산에서 오늘날 우리의 교육 문제를 성찰하는 데 참고할 만한 소중한 지혜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