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개신교와 천주교의 민주화운동사 총정리!
민주주의는 국민이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는 제도이자 그런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이다. 1919년 임시정부의 헌장에 ‘민주공화국’이 명시된 이래 민주주의는 오늘날까지 기본 정치 원리로 유지되고 있으며, 비단 정치영역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회 여러 분야로 확대되어 우리 사회의 상식적인 가치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한국 사회에 뿌리내리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수많은 시민의 헌신과 투쟁, 피와 눈물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특히 1970년대 유신체제는 한국 현대사에서 최악의 반민주적인 억압체제였으며, 독재권력의 폭력과 야만에 맞서 시민들은 각 분야에서 광범위한 민주화운동을 벌이며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긴 독재정권을 거치고 문민정부에 이르러 사실상 소멸한 것으로 여겨졌던 반헌법적이고 반민주적인 비상계엄, 내란, 쿠데타 같은 용어들이 되살아나 민주주의가 다시금 위기에 처한 지금, 1970년대 천주교와 개신교의 민주화운동사를 총정리한 《1970년대 민주화운동과 개신교》, 《1970년대 민주화운동과 천주교》가 동시 출간되었다. 한국의 대표 종교인 천주교와 개신교의 민주화운동은 그동안 전체 민주화운동사의 일부로만 다뤄졌다. 이 두 책은 1970년대 민주화운동사와 한국교회사 전체를 아우르는 종교 부문 민주화운동에 대한 통사적 접근으로, 오랜 기간 전문가들의 연구와 토론, 비평을 거쳐 탄생한 소중한 결실이다. 온 국민이 민주화에 대한 간절한 열망으로 뜨겁게 불타올랐던 1980년대를 추동하는 동시에, 이를 든든히 뒷받침한 주춧돌로 기능하며 오늘날까지 민주주의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고 잇게 한 1970년대 천주교와 개신교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입체감 있고 생생하게 조망할 수 있을 것이다.
천주교는 모든 사회문제에 윤리적 차원이 들어 있다고 본다. 따라서 비인간적 생활 조건이 인간의 가치실현을 가로막고 온전한 구원과 발전을 추구해야 하는 인간의 본질을 저해하는 경우라면 관심을 갖는 것이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일이라 본다. 이때 사회교리는 그 사회의 윤리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교회는 사회교리를 통해 ‘구원의 길에 있는 인간을 도우려’ 한다. 그리고 이것을 교회의 첫째가는 목적으로 간주한다.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한국천주교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의
일제 강점기와 해방공간, 한국전쟁과 이승만 정권기를 거치는 동안 한국 사회는 극심한 사회 혼란에 빠졌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잠시 열렸던 민주화의 공간은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일시 폐쇄되어 버렸으며, 이후 이어진 개발독재 시대는 민중들의 기본 생존권과 기본 노동 조건을 확보하기 위한 작은 노력조차도 전개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1970년대 이전까지 한국 천주교는 강력한 ‘성속이원론’과 ‘정교분리론’을 근거로 조직 차원에서 사회교리를 구현하는 사회참여가 기계적인 중립을 지키는 선에서만 이루어졌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한국 천주교는 민주화운동의 주요 주체로 등장하며 사회참여를 본격화하기 시작한다. 박정희 독재체제의 극심한 탄압과 권위주의적 통치로 민중들의 삶이 위태로워지자 그에 대한 윤리적 대응 차원에서였다.
모든 억압으로부터 자유와 자율을 확대하고 인간의 기본권을 수호하며 민주주의의 진전을 이루려는 노력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자 가톨릭 사회교리 전통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온 주제이자 활동이었다. 특히 천주교가 민주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사제들의 결속력, 신자들의 사제에 대한 존경심과 신뢰, 교계 상층부의 이들에 대한 지지, 참여 주체의 신앙적 확신 등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 교유한 신앙 유산인 순교 정신도 살신성인을 요구하는 민주화운동에서 중요한 참여 동기와 지속 요인이었다. 전쟁 후 지속적 성장을 거듭하며 100만 명에 이른 교세와 함께 가톨릭의 국제적인 네트워크의 존재 또한 유신 정권으로 하여금 한국천주교를 쉽게 대할 수 없도록 했다. 박정희가 유신체제를 공고히 하며 폭력과 무력으로 국민을 통치할 때 그 억압에 대응하며 민주화운동의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되살리고 전진시키는 역할을 한 것이다.
한국 천주교 민주화운동에 대한 최초의 통사적 접근
이번에 출간된 《1970년대 민주화운동과 천주교》는 1970년대 천주교 민주화운동에 대한 최초의 통사적 접근이라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이 시기는 그동안 한국 천주교회사의 일부로만 다뤄지거나 전체 민주화운동사의 부문으로만 다뤄지며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우리신학연구소 필자들의 3년에 걸친 프로젝트 연구작업 끝에 그동안 존재를 알지 못했던 해외교회 문서와 정부 미공개 문서, 교회의 미발굴 문서와 당시 활동가들의 구술증언을 폭넓게 발굴하고 수집해 1970년대 천주교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모든 주체들의 활약상을 입체적이고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복원할 수 있었다. 1970년대 초 원주교구의 부정부패 추방운동에서 시작해 지학순 주교 구속과 석방으로 정점에 이른 1975년까지를 전반기, 긴급조치 9호 발령으로 민주화운동 진영 전체가 침묵을 강요당했을 때 원주선언과 3·1명동구국선언으로 민주화운동의 불꽃을 재점화한 1976년부터 유신체제의 종말을 맞는 1979년 말까지를 후반기로 구분해 시기별로 운동의 전개 과정과 특징을 구체적으로 담아내면서 1970년대 천주교 민주화운동의 여정을 국면마다 역사적 상황과 사건의 맥락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서술한다.
이 책은 사건의 인과관계와 운동 주체 간 연계를 충분히 고려하면서 천주교 내의 다양한 운동주체와 해당 시기 천주교가 참여한 민주화운동의 영역 전체를 고루 드러낸다. 1970년대 들어 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의 다수를 이룬 생산직 노동자들의 노동운동, 농민권익옹호와 사회정의실현을 목표로 한 가톨릭농민회의 농민운동, 지학순 주교의 구속을 계기로 유신체제 철폐운동과 인권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한 교구 구성원, 일본 천주교정의평화협의회를 비롯한 해외가톨릭교회의 지원과 연대, 유신 정권의 부당한 탄압에 대해 여러 차례 관여하며 견제한 교황청을 비롯해 평신도 지식인과 가톨릭 대학생과 수도회 및 수도자들, 외국인 선교사 등 다양한 운동 주체들의 활약상을 밝히고 풍부한 자료를 통해 개요만으로 남았던 사건을 입체적으로 재조명한다.
이 시기 천주교 민주화운동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에 속한다.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된 중남미 가톨릭교회의 해방운동, 1970년대 초반 필리핀의 민주화운동, 냉전 시기 동유럽 가톨릭 국가들이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운동 등이 같은 범주에 드는 세계사적 사건이다. 한국의 천주교민주화운동은 거의 동일한 주체들이 이 운동을 20년 이상 지속했다는 점에서 유일하다.
〈발간사〉 중에서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의 외침을 외면하지 않는 예언자적 직무
1974년, 유신독재에 맞서 ‘순교찬미 기도회’를 열면서 출범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2024년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1980년 광주의 진실을 앞장서 알렸고,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조작 사실을 폭로해 6월 항쟁을 이끌었다.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사제단은 50년이 지난 2024년 현재도 한국 사회가 정치적 사회적 위기에 처할 때마다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리가 ‘제1시국 선언문"에서 천명했던 유신헌법 철폐와 민주헌정 회복 등은 지금 짓다 만 밥처럼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 버렸다. 살벌하고 교활하고 악랄했던 독재 권력에 맞서 피눈물로 이룩한 성취가 시시각각 급속도로 무너져 내리고 있으니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다시 한번 민주의 이름으로 크게 일어설 때가 왔음을 말씀드린다.”
천주교 민주화운동은 그리스도 경전인 구약에 나오는 예언자 운동과 매우 닮았다. 예언자들은 오로지 자신의 행동을 하느님이 뒷받침한다는 신앙과 양심만을 무기로 부당한 권력에 대항한다. 그들은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의 외침을 외면하지 않고, 목숨이 위태로울 것을 알면서도 불의한 권력에 용감히 맞선다. 한국 천주교의 민주화운동 또한 이런 동기와 배경에서 이루어졌다. 《1970년대 민주화운동과 천주교》는 1970년대 천주교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다양한 주체를 발굴하고 그들의 활약상을 상세히 밝힌다. 당시의 천주교 민주화운동은 하느님 나라의 백성을 넘어 수많은 지식인과 학생, 민중이 함께한 거대한 연대의 움직이었으며 그 연대의 불씨는 1980년대와 1990년대 민주화에 대한 국민들의 뜨거운 열망의 불꽃을 더욱 크게 타오르게 했다. 그리고 그 불씨는 여전히 꺼지지 않고 2024년, 또다시 위기에 처한 한국 민주주의의를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