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에 숨어있는
아주 사소하고 심각한 법 이야기
로펌에서 법률 자문이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맡았던 변호사 초년생 시절, 저자는 업무에 대한 압박과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틈틈이 그림을 감상하는 취미생활에 빠져들었다. 저작권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사건으로 변호 업무를 시작하게 되면서, 이는 단순한 취미활동을 넘어 전문성을 키우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전시회 도슨트로부터 바로크 미술의 거장 루벤스의 작품 해설을 듣게 된다. 루벤스의 그림 아래서 눈을 감은 《플랜더스의 개》 네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법적으로 한번 따져보고 싶어졌다. 우리나라 성당이라면 소설 속에서처럼 돈을 받고 그림을 보여주는 것이 가능할까? 화가는 그런 성당의 정책에 대해 승낙이나 거절이 가능할까? 저자는 곧바로 서점으로 달려가 클래식 잡지를 사고 그 안에 들어있는 작품들에 대한 법적인 해석을 시도했고, 그것이 이 책의 시작점이 되었다.
진주는 보석의 종류라고 할 수 있을까?
냇가에서 빨래하는 것의 법적 문제는?
법률과 예술을 통합한 글을 기고해 온 지 13년이 되면서 130여 편의 그림과 음악, 소설 작품을 다루었고, 그중 독자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주제를 선정해 이 책에 실었다. 유명한 그림 속에서 엿보는 아주 사소한 세상 만물에 관한 법 이야기부터, 심각한 사건사고가 얽힌 예술 속 이야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이 책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대표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서 소녀의 귀에 걸린 진주가 귀금속인지 보석인지를 법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을까? 폴 카미유 기구의 〈빨래하는 여인〉, 빈센트 반 고흐의 〈빨래하는 여인들이 있는 아를의 랑글루아 다리〉에서처럼 냇가에서 빨래하는 것은 어떠한 법적 문제가 있을까? 훈민정음 해례본을 NFT로 발행할 때의 저작권 문제는? 아이돌 의상 콘셉트를 남들이 따라 하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보호할 수 있을까? 부모가 이혼할 때 자녀가 스스로 누구와 살지를 결정할 수 있을까?
그림과 음악, 소설 등의 작품들마다 그 안에는 많은 사연과 사건이 존재한다. 그에 대해 법적으로 질문을 던져보면서 예술을 예술의 차원에만 두지 않고 현실로 끌어와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다. 이렇듯 예술작품 속에 담긴 다양한 사연들을 법적으로 따져보는 것은 예술을 또 다른 관점으로 즐기는 방법이 된다.
사회적 이슈와 예술작품을 판례와 함께 소개
그림을 통해 법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하는 색다른 재미
이 책은 예술가와 예술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현대의 사회적인 이슈와 연관 지어 소개한다. 또 실제로 일어난 사건의 판례를 덧붙여 생생한 사건 현장으로 독자들을 안내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일반인들이 법의 영역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것 또한 이 책이 주는 커다란 묘미이다.
예를 들어 독특한 인물화를 그렸던 화가 아르침볼도와 이를 모방한 초현실주의 작가들을 통해, 2020년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생성형 인공지능의 법적 문제를 짚어본다. 생성형 AI가 기존의 작품들을 학습해서 새로운 산출물을 만들어냈을 때 법적인 문제는? 학습 과정에서 사람의 얼굴 사진을 이용하는 경우 초상권 문제는 또 어떤가? 러시아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푸시킨은 결투로 인해 사망하고, 바로크 음악의 거장 바흐는 백내장 수술 후 사망했는데, 이런 안타까운 죽음을 현대의 법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자유롭고 탐미적인 삶을 살았던 화가 클림트는 사후에 14건이나 되는 양육비 청구 소송이 있었는데,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이슈가 되는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사례와 함께 살펴보기도 한다.
이렇게 법의 시선으로 예술을 바라보면 그 안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살아 움직이고 사건사고에 휘말리기도 하고 많은 감정을 느끼는, 나와 다르지 않은 인간의 이야기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