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은 한반도의 자생적 종교인 동학(東學)을 창명한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 1824-1864) 선생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다. 이에 동학과 인연 깊은 서학(기독교) 신학자, 연구자들이 동학과의 대화를 시도하였다.
동학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크게 끓어오르는 시대 환경에 더하여, 130년 전의 동학농민혁명 시기와 같은 ‘혁명적 상황’이 연출되는 한반도의 격동의 시기에 이러한 ‘동학과 서학의 만남’을 새삼스럽게 시도하고 그 의미를 살피는 일은 의미 깊다. 특히 동학은 오늘 한국 현대사에서 여러 차례의 고비를 넘어선 ‘촛불 혁명 대중’의 ‘직접 민주주의’ 행동의 역사적 원천이며 원점이라는 점에서 자못 의의가 크다.
이미 이러한 유의 과업을 여러 차례 수행해 본 분들이 다수인 관계로, 동학에 대한 서학적 관점의 수립과 점검 과정은 동학을 새롭게 이해하면서, 나아가 서학(기독교) 자신에 대한 새로운 이해이기도 하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인식의 전환, 관점의 변환은 단지 사변적인 데에 머물지 않고 동학(천도교)와 서학(기독교) 자체의 존재론적 변신을 가져온다. 그러므로 이 책은 단지 종교 간 대화일 뿐만 아니라, 오늘 인류세의 위기 상황에서 인류와 생물권, 지구에 구원(救援)을 제안하고 제시하는 일이기도 하다.
여전히 완전 불식되지는 않았으나 이제는 많이 사라진, 동학과 서학의 관계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 즉 동학이 서학에 반대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종교라는 인식은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없다. 동학과 서학은 엄연히 그 토대로 하는 사상적 기반이 다르지만, 그 둘을 깊이 이해하면 할수록 둘 사이에는 차이점보다 공통점과 유사성이 훨씬 더 많고, 본질적인 측면이라는 것이 지금은 주류이다.
물론 현실 역사에서의 기독교 진영의 성장, 그리고 동학(천도교) 진역의 쇠락 과정은 동학(천도교)와 서학(기독교)의 무조건적인 화해와 연대를 막아 세우는 중요한 역사적 실재이다. 즉,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서구화, 기독교화는 그 반대급부로 동학(천도교)을 비롯한 민족적, 자주적 진영의 몰락을 전제로 한 것이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끊임없이 원점(원형)을 추구하고 기구하는 종교 및 종교연구(신학, 동학)와 별개의 것이기도 하다. 나아가, 그러한 비본질적인 것의 득세를 고발하고, 처음 마음으로 회귀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종교적인 행위-방식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동학(천도교)와 서학(기독교)의 차이와 반목이 아닌 공동과 공통의 접점에 서서 상호 이해의 심화와 새로운 지평으로의 전환을 시도한다. 제1부에서 이은선은 「참 인류세를 위한 동학(東學)과 서학(西學) 그리고 신학(信學)」이라는 글로, 동학 창명의 사상적 역사적 배경이 되는 유학의 재조명, 거기에 대한 동학의 ‘다시 개벽’의 응전, 그리고 오늘 21세기에서의 신학(信學)으로의 전위라는 히스토리를 구성한다. 이은선은 동학의 독창적 차원과 역사적인 응전에 대한 유학과 서학 관점에서의 이해를 통해 신학(神學) 이후의 신학(信學)을 모색한다.
제2부에서는 동서의 내재적 초월주의로서 동서 종교의 신비주의적 전통을 탐색한다. 첫째, 최대광은 「동학의 수행과 기독교 여성의 전위적 만남」라는 글에서 서학 전통의 마이스터 에크라르트 신비주의 영성과 동학 전통의 수운 최제우 - 해월 최시형의 영성적 삶을 비교함으로써 그 신비주의적 전통과 사유의 고찰과 상호 이해를 도모하고 ‘기독교적 만트라’를 전망한다. 둘째, 김정숙은 「구원 신학으로서의 초월적 휴머니즘」이라는 글로 유대교 카발라 신비주의 전통하의 바알 셈 토브와 수운 최제우의 신비체험을 비교하면서 ‘초월적 휴머니즘’이라는 구원 신학을 전망한다. 셋째, 정경일은 「‘내면의 빛’과 ‘시천주’」라는 글로 17세기 중반 영국 퀘이커교 창시자 조지 폭스와 수운 최제우를 연결하여 눈물과 고통에 찬 삶으로부터 얻어진 종교체험의 자리에서 꽃핀 사회적 영성을 살핀다.
제3부에서는 앞서 살핀 내재적 신비주의가 어떻게 오늘의 삶에서 전복적이고 사회 해방적인 실천과 수행의 원리가 되는지를 살핀다. 첫째, 김응교는 「동아시아 문학이 보는 ‘가족’, 그리고 동학과 기독교」라는 글로 오늘날 동아시아의 가족주의가 여성과 사회 공동체에 대해 가하는 폭력을 살피고, 동학과 예수 가족의 전복적이고 여성해방적인 측면을 “전 근대를 극복하는 영적 가족관”으로 개념화한다. 둘째, 이찬수는 「명멸하는 개벽과 신국-인류세의 개벽론, 비인간 존재들의 신국론에 대하여」라는 글로 오늘 인류세의 위기를 다시 조명하고, 그 대안이 될 동학의 ‘개벽’은 기독교의 ‘신국’과 마찬가지로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비인간 존재들과 선한 관계를 맺는 지속적인 노력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짐을 살핀다. 셋째, 이찬석은 「모심과 오심」이라는 글에서 동학과 서학의 종말론을 성찰한다. 기독교 신학 중 몰트만의 종말론은 파국적인 종말론이 아니라 하느님 ‘오심’으로서 해석되는 ‘이 세상 중심적’인 것으로 이것은 수운의 동학의 ‘모심’의 종말론이 이 세계 안에서 무극대도의 실현을 추구하는 것과 유사함을 밝힌다.
제4부에서 이정배는 「동학과 개벽 신학-多夕의 ‘바탈’과 ‘역사 유비’에 근거하여」라는 긴 글로 동학과 서학의 만남을 “개벽 신학”이란 상호 통섭적인 언어로 재구성하고, 이를 한국 고(古) 사상의 원점 혹은 반영이라고 할 「천부경」을 통해 재조명하여, 김용옥의 기학적 동학 이해를 극복하고자 한다. 도 다석 유영모의 바탈(空) 의식과 신학자 이신(李信)의 묵시문학 이해를 관통하면서 ‘역사 유비’를 통해 현재의 동학-기독교 이해를 넘어서는 새로운 ‘空-公-共’의 신학을 제시한다.
동학과 대화를 거듭 시도해 오고 있는 이 책의 저자들은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한국의 기독교가 새롭게 태어나고, 한국의 개벽종교 천도교(동학)도 다시 큰 역동성을 회복해서 서로 자극하고 이끌어주면서 새로운 후천개벽의 인류세를 열어 갈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그것을 통해서 온 만물이 큰 우주적 생명 공동체 안에 함께 거할 수 있는 여지를 얻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