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크게 네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이야기인 “사물의 역사”에서는 사물의 성격과 이해 방법을 논한다. 두 번째 이야기인 “사물의 분류”에서는 사물의 형식과 시리즈의 특성을 살핀다.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사물의 분류, 발명, 복제, 폐기에 의한 “사물의 확산”을 이야기한다. 네 번째로 사물의 형식과 시리즈가 지속하는 다양한 양상을 살피는 “지속의 몇 가지 유형”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양식을 무지개처럼 특정 조건과 상황에서만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과 같다”고 말하면서 사물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순수주의처럼 과거의 신호를 제한하지도 말고 의미와 형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도 말고 양식이라는 퇴색된 용어에 의지하지 말라고 당부하며 글을 끝맺는다.
이 책은 예술품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그리고 그 순서를 배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주목한다. 이런 문제들은 예술품의 의미나 이미지와 무관하게 발생하며, 사람들이 예술을 단순한 형식으로만 보지 않고 더 깊은 의미를 찾기 위한 상징적 복합체로 보기 시작한 이후 40년 넘게 주목받지 못했다.
_10쪽에서
우리가 예술사를 이해하는 방식은 오히려 욕구 충족의 다른 단계에서 되풀이되는 욕구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통해 문제의 지속 기간을 인지하는 것이다.
_95쪽에서
역사적인 관점에서 예술과 관련된 사건의 순서를 배열할 때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전체 형식언어가 갑자기 사용되지 않고, 다른 구성 요소와 익숙하지 않은 문법으로 구성된 새로운 언어로 대체될 때의 시차다. 이는 내용과 표현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나타내며, 예술 분야에서 혁신과 발전을 의미한다.
_118쪽에서
복제품이 있으려면 원본이 있어야 하고, 모든 원본은 우리를 인간 사회의 기원으로 직접 안내하기 때문에, 변화의 본질 탐구를 원한다면 우리는 형식의 순서 배열을 조사해야 한다.
_140쪽에서
모든 사물은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각각의 특성은 서로 다른 시기에 형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각 특성의 묶음도 각기 다른 연대를 가진다. 이는 마치 포유동물에서 혈액과 신경이 서로 다른 생물학적 연대를 가지고 있고, 눈과 피부가 서로 다른 체계적 연대를 가진 것과 같다. 간단히 말해서 모든 사물은 각기 다른 역사와 발전 단계를 가진 여러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_166쪽에서
“양식은 무지개와 같다”
조지 쿠블러는 모든 사물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달라지기에 양식처럼 변하지 않는 개념으로 확정할 수 없는 것으로 본다. ‘양식은 정적인 집합체들을 다룰 때만 의미가 있으며 시간의 흐름 속으로 돌아가면 양식은 사라진다’며 “양식은 무지개와 같다”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무지개를 볼 수 있는 때는 태양과 비 사이에 멈추는 잠시뿐이고 무지개를 봤다고 생각한 장소에 다시 가면 이미 무지개는 사라지고 없는 것처럼 한 예술가의 작품을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작품은 특정 예술가의 전임자나 추종자의 작품으로 이어지며 시간의 흐름 속에서 녹아내린다는 것이다.
이 책은 주요 사건들을 새롭게 배열하는 방법을 제안하는 것으로 너무 다양한 의미를 가진 양식이라는 개념 대신 진품과 복제품의 연결 관계를 통해 같은 시리즈에서 초기와 후기 형식으로 인식할 수 있는 모든 사물의 시기별 특성을 설명했다는 말로 글을 끝맺는다.
옮긴이는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고 한다. “지금까지 관심 가지지 않았던 대상과 지역으로 확장해 사물의 형상을 살펴야 하고 특정 시기와 지역에 나타난 어떤 사물의 독특성이 아니라 초기와 후기 형식으로 구성되는 시리즈의 보편적 특성을 통해 사물의 다양한 역사를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서양미술사나 한국건축사처럼 임의로 상정한 지리적 범위에서 단선적으로 시대를 구분하고 각 시기의 대표 양식을 설명하는 관습적 역사는 쿠블러에 따르면 ‘무지개와 같은 환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이 책을 옮기는 데 2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저자의 독특한 문체와 깊이 있는 사유를 온전히 살리기 위한 어휘를 선택하고 여러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주요 용어들을 우리말로 어떻게 옮길지 결정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큰 변화는 지속 기간이 길다. 정확한 관점에서 보자면, 어떤 위대한 사건도 짧은 기간일 수 없다. 하지만 과거를 설명하는 관습적 방식 때문에, 우리는 역사가 짧게 분절된 위대한 순간만으로 구성되고, 그 사이는 쓸모없는 지속 기간으로 가득 차 있다는 식의 사고와 행동을 강요받는다.
_125쪽에서
사물의 역사에는 오직 두 가지 중요한 속도가 존재한다. 하나는 작고 고립된 사회에서 빙하처럼 느리게 바뀌는 방식이다. 여기서 변화 속도를 바꾸기 위한 의식적 개입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빠르게 바뀌는 방식으로서 서로 관련 없는 곳에서 동시에 타오르며 먼 거리를 뛰어넘는다는 점에서 산불과 유사하다.
_157쪽에서
양식은 무지개와 같다. 이는 특정한 물리적 조건이 우연히 일치했을 때 발생하는 인식 현상이다. 무지개를 볼 수 있는 때는 오직 우리가 태양과 비 사이에 멈추는 잠시뿐이다. 우리가 무지개를 봤다고 생각한 장소에 가면, 무지개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_218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