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는 변화와 혁신에 주목한다
그러나 진정 중요한 것은 불변의 반복이다
주식 투자자는 바쁘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그 변화를 수익의 기회로 삼으려면 바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투자자는 좋은 투자 대상을 찾기 위해 새로운 정보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런데 이렇게 바쁘게 최신 정보에 촉각을 세우다보면 종종 잊게 되는 사실이 있다. 바로 경제는, 산업은, 그리고 금융시장은 일정한 주기로 등락을 거듭하는 일정한 사이클을 보여왔다는 사실이다. 달리 말하면 눈앞의 새로움에 사로잡혀 과거에 수많은 투자자가 저질렀던 실수를 반복할 수 있다.
그래서 세계 최고의 투자자 중 하나로 꼽히는 하워드 막스는 《하워드 막스 투자와 마켓 사이클의 법칙》에서 이렇게 말했다. “경제와 시장은 과거 한 번도 직선으로 움직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는 사이클을 이해하는 투자자는 수익의 기회를 찾아낼 것이라는 뜻이다.” 시장 사이클에 대한 이해는, 주식 투자를 언제 어떻게 할지 판단의 기준을 제시해줄 수 있다는 뜻이다.
바로 이 지점에 주목해 골드만삭스의 글로벌 주식 전략가 겸 유럽 거시경제 연구 책임자인 피터 오펜하이머는 골드만삭스 리서치팀의 도움을 받아 1970년 이후의 주식 시장 사이클을 10년간 면밀하게 분석해, 투자자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정리했다. 《블룸버그뉴스》는 그래서 그를 “주식의 대부”라고 평가했다.
피터 오펜하이머는 여러 투자의 대가들이 말했듯 사이클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사이클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그것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어떻게 종류가 나뉘고 그 특징은 무엇인지, 사이클의 국면에 따라 성과가 좋았던 자산과 종목 그리고 투자 전략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약세장, 강세장, 버블을 꼼꼼하게 살펴보면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어떤 요소들에 주목을 해야 하는지도 추려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투자자는 주식 투자의
장기 수익률을 알아야 한다
주식 시장에 일정한 사이클이 있다는 사실은 투자의 역사를 긴 안목으로 봐야만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까? 저자는 사이클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기 전에 주식 투자 수익률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시각화함으로써, 그럴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가장 중요한 내용은 메시지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1900년 이후로 매년 수익률이 가장 좋았던 한 달을 놓쳤다면 연평균 2% 수익률 밖에 거두지 못한 반면, 매년 최악의 한 달을 피했다면 연평균 18% 수익률을 얻을 수 있었다. 이는 전량 계속 보유했을 때보다 약 80% 높은 수익률이다. 이런 결과는 급격한 하락을 피하는 게 수익률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최고의 한 달을 놓치면 매우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것 또한 보여준다. 진입 시점 이슈는 모든 금융시장에 적용될 수 있다. 벤치마크 ‘멀티에셋’ 포트폴리오, 예를 들어 항상 주식에 주식에 60%, 채권에 40%를 투자하는 포트폴리오는 최고의 한 달을 놓친 경우 연 2%, 최악의 한 달을 피한 경우 연 12%의 수익률을 기록했다.”(본문 64~65쪽.)
이 이야기의 핵심은 1년이 아닌 좀 더 긴 기간에 걸친 사이클에도 적용할 수 있다. 즉, 10년간 장기 투자를 한다고 가정할 때 가장 수익률이 나쁜 시기를 피해서 투자를 하는 것이 수익률을 높이는 데 엄청나게 중요하다. 그리고 수익률이 가장 좋은 시기에 투자를 하는 진행하는 것이 좋다. 이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지 못하면, 치명적인 실수로 회복하기 힘든 손실을 볼 수도 있고, 잘 꾸려진 포트폴리오가 빛이 바랄 수 있다. 긴 안목으로 투자 수익률을 보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투자 전략도 그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기 힘들다.
사이클에 대한 이해가
투자 전략의 성공 확률을 높인다
그렇다면 언제가 가장 수익률이 나쁜 시기이고 언제가 수익률이 가장 좋은 시기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사이클의 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저자에 따르면 사이클은 절망, 희망, 성장, 낙관 국면으로 나뉜다. 절망 국면은 주가가 정점에서 저점으로 하락하는 기간이고, 희망 국면은 바닥에서 반등하는 시기다. 성장 국면은 이익과 주가가 함께 상승하는 시기이고, 낙관 국면은 이익보다 주가가 빠르게 증가하는 시기다. 사이클 국면이 이렇게 나뉘는 이유는, 사이클에서 실제로 기업들이 성과를 내는지도 중요하지만, 투자자들이 향후 경제나 기업이 어떨 것이라고 믿는지가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낙관 국면은 거시경제 지표가 지지부진한데도 성장을 낙관하고 다른 이들이 모두 누리는 수익으로부터 소외되지 않기 위해 주식시장에 뛰어드는 투자자가 많아지는 시기다.
이 국면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투자 수익률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주식 투자가 가장 수익이 좋을 때는 언제일까? 경제가 성장하는 시기, 즉 성장 국면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투자 수익이 가장 좋은 것은 실제로 경제가 좋은 시기가 아니라 경제는 아직 좋아지지 않았지만 투자자들이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시기, 즉 희망 국면이다. 반대로 가장 수익률이 나쁜 국면은 당연히 절망 국면이다. 그런데 이 절망 국면은 모두가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라고 믿고 투자에 뛰어드는 시점 직후 갑자기 찾아온다.
국면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자산배분, 분산투자의 큰 그림도 그릴 수 있다. 주식 이외의 자산 이를테면 채권이나 원자재는 사이클의 국면에 따라 수익률 변동 양상이 다르다. 희망 국면에서는 주식이 압도적으로 수익률이 좋지만, 절망 국면에서는 최악이다. 반대로 절망 국면에서 채권과 원자재로 분산투자를 해두었다면 얻을 수 있는 초과 수익이 굉장히 크다.
투자 종목이나 전략도 마찬가지다. 경기에 따른 성장 속도에 따라 경기민감산업과 경기방어산업을 나눌 수 있다. 원자재, 자동차 및 부품, 금융, 테크, 산업재, 럭셔리가 경기민감산업으로 분류되고 유틸리티, 통신, 부동산, 리테일, 헬스케어, 음식료가 경기방어산업으로 꼽힌다. 저자가 1970년대부터 데이터를 검토한 결과 절망 국면에서는 경기방어주에 대비해서 경기민감주의 상대수익률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희망 국면과 낙관 국면에서는 상대수익률이 높다.
사이클에 대한 이해는 본인의 투자 전략을 결정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파도가 아닌 바람을 보는 법
약세장과 버블을 통찰하는 신호들
영화 〈관상〉에 투자자의 마음을 울리는 명대사가 있다. 아들을 잃고 은거한 내경(송강호 분)이 한명회에게 한 말이다.
“나는 사람의 얼굴을 봤을 뿐, 시대의 모습을 보지 못했소.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만 본 격이지. 바람을 보아야 하는데…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인데 말이요.”
앞서 저자는 파도를 이해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각 파도의 국면마다 여러 종목, 자산, 투자 전략의 수익률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설명했다. 그렇다면 언제 파도가 높이 오르고, 언제 낮게 쓸려가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약세장이 찾아왔을 때, 다음 강세장이 찾아올 시기를 가늠할 수 있는 신호가 있을까? 너도나도 투자에 뛰어드는 시기에 버블의 붕괴를 감지할 방법이 있을까? 다르게 말하면, 주식 시장의 ‘바람’을 보는 방법은 무엇일까?
수많은 투자의 대가들이 주가의 파도를 읽고 적절한 ‘타이밍’에 시장을 들어갔다가 나오는 전략은 불가능하다고 말해왔다. 저자도 마찬가지다. 약세장과 강세장의 정확한 타이밍을 맞출 방법은 없다. 매년 여러 국가들에서 경기선행지표 10가지 정도를 추려서 향후 경기를 예측하지만, 그런 지표로 시장을, 특히 급격한 약세장을 예측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저자는 사이클을 이해하는 노력이 무의미하지 않다고 말한다. “예측이 어렵다고 잠재적인 위험을 이해하고 앞으로 나타날 기회를 살펴보는 게 쓸모없는 건 아니다. 특정 지점에서 일어날 일을 예측하는 점 추정은 경제와 금융시장에서 그다지 잘 맞지 않지만, 중요한 변곡점이 나타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신호를 포착하는 것은 점 추정보다 쉽고 여러 측면에서 훨씬 중요하다. 정말로 중요한 건 이런 변곡점이다. 다른 장에서 살펴보겠지만, 급격한 조정을 피하고 시장 회복 초기 단계에 시장에 참여하는 것이 수익률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본문 39쪽)
사이클을 예측하고자 할 때,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한 가지 또는 몇 가지 선행 지표로 예측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금리나 정부의 정책은 당연히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는 생각보다 복잡해서 그것을 예측을 위한 선행 지표로 삼기에는 무리가 있다. 실업률이나 인플레이션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개별 지표가 아니라 여러 지표는 물론 시장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의 ‘조합’을 강조한다. 약세장을 예로 들어보자. “일관되게 시장이 고점을 치기 전에 방향을 전환하는 변수는 찾기 어려웠지만, 약세장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다른 변수들과 함께 특정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는 변수는 몇 개 있다. 비록 이들 중 일부는 사전에 ‘위험’ 수준을 꽤 잘 나타내지만, 정말 유용한 건 이 변수들의 조합이다. 적어도 조합으로는 시장 고점 이후 약세장에서 반등이 나왔을 때 단기 조정인지 아니면 정말 큰 하락의 시작인지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본문 160쪽)
저자는 약세장은 물론 강세장, 버블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지표나 양상들도 짚어준다. 더 나아가서 금융 위기 이후에 주목할 만한 사이클의 특징은 무엇인지, 미래에는 사이클의 양상이 어떨지를 간략하게 다룬다. 이미 금융 위기 이후 상당한 시간이 지난 오늘날 이루어진 일들을 저자는 이미 이전부터 짚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 새로운 정보는 없다. 하지만 과거의 정보를 한눈에 일별할 수 있도록 종합해서 투자 판단에 도움을 주는 책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