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한 귀신은 부적을 몰라보고, 모르면 당하는 게 세상 규칙이다!”
한때 세상을 뒤엎고 싶었던 속물 변호사 최수현
그가 두드린 판도라의 상자가 거대한 조직을 깨웠다
〈범죄도시〉의 주인공 마동석은 경찰이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주먹을 자랑하는 그는 때론 그 어떤 범죄자보다도 더 범죄자처럼 느껴진다. 불법과 합법 사이,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여기, 무시무시한 주먹은 없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머리와 촉을 가진 변호사가 있다. 전직 반부패수사부 검사였던 그는 조직 안에서도 에이스로 꼽던 수사 전문가였다. 그의 이름은 최수현이다.
이야기는 최수현 변호사가 호텔에서 눈을 뜨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지난밤 붉은 옷을 입은 미모의 여성과 즐거운 밤을 보내려던 그는 약을 먹고 취해 잠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재킷 주머니 안에 들어있던 법원 제출용 증거가 사라진 걸 알게 된다. 그는 즉각 레이더를 돌린다. 검사 재직 시절, 여기저기 정보원과 빨대를 꽂아두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아무나 믿고 맡길 순 없다. “그들은 흘린 피 몇 방울에 상대방 살 두어 근을 받아내는 작자들이었고, 빚을 톡톡히 받아낸 뒤에도 수현의 뼈를 으드득 씹으려 들 게 분명했다.” 그는 자신과 함께 일했던 백태현 수사관을 파트너로 소환한다.
곧 레이더에 단서가 포착된다. 최근 청담동 사모님들과 인플루언서 사이에서 뜨고 있는 디자이너 윤종건이다. 최수현 변호사는 곧바로 그의 숍을 찾아가 문을 두드린다.
“비밀은 아는 놈이 적을수록 단단하게 지켜지는 법이야!”
각기 다른 색을 지닌 개성 만점 인물들이 자아내는 다채로운 스토리
치밀한 설계와 맛깔나는 대사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압도적 몰입감
디자인숍 문이 열린 이후부터 이야기는 정신없이 흘러간다. 사실 그곳은 평범한 옷가게가 아니었다. 바로 거대 폭력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세탁소였다. 게다가 최수현 변호사가 쳐들어가기 전부터 그곳을 지켜보는 의문의 조직과 가짜 변호사도 있었다. 그렇게 최수현 변호사가 쏘아 올린 공은 범죄 조직을 거쳐 검찰 조직으로, 나아가 대한민국 전체를 뒤흔드는 트리거가 된다.
『나쁜 검사들』에는 등장인물이 많다. 하지만 굳이 이름을 외우거나 앞장을 뒤적일 필요는 없다. 눈 밝은 독자는 이미 알아차렸겠지만, 이 책의 목차는 각 등장인물의 성격을 특정 색상과 물건으로 표현하고 있다. 주인공 최수현 변호사는 ‘푸른 재킷’, 검찰 개혁을 꿈꾸는 김훈정 검사는 ‘검은 하이힐’, 백태현 검찰수사관은 ‘남색 아반떼’, 부패 검사들은 ‘황금 커프스 단추’, 검은 조직을 이끄는 보스는 ‘보랏빛 행거치프’ 식이다. 그만큼 각각의 인물은 절대 섞이지 않는 분명한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이 날실과 씨실처럼 엮여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개성 강한 인물들 만큼이나 그들이 주고받는 대사 역시 재미가 일품이다. 검사들 사이에 통용되는 은어나 관행, 범죄자들이 쓰는 말투를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이중세 작가는 꽤 오랫동안 공을 들여 자료를 조사하고 관계자들을 인터뷰했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다는 표현은 바로 이럴 때 필요한 것이리라. 살아 있는 인물들이 엎치락뒤치락 하며 물리고 물려 서로의 등을 향해 칼끝을 겨누는 장면은 긴장 이상의 짜릿함과 스릴을 독자에게 제공한다. 결국 이 싸움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독자들은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까지 결코 책을 덮지 못할 것이다.
“당신들이 거기 버티고 서야 저 조직이 더러운 하수구로 안 쓸려나가.
당신 둘이 저기를 지탱하는 큰 닻이라고.”
권력을 지키기 위해 범죄자들과 손을 잡고 협잡을 서슴지 않는 부패 검사들,
그리고 이들에 맞서 검찰을 개혁하려는 자들의 수사 활극
작금의 현실에 대한 울분을 달래줄 웰메이드 누아르 소설
부패를 척결하고 정의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권력을 갖게 되면서 다시 부패가 시작되는, 이 악의 순환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송태섭의 말처럼 “자기만의 피라미드 꼭짓점을 밟아본 사람들은 안다. 그 자리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미 썩을 대로 썩어 균열이 가고 무너진 질서를 지키기 위하여 다시, 더러운 거래는 계속된다.
사실 이 책은 오래전 작가가 써 놓았던 단편소설을 기반으로 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작가는 검찰 개혁에 관련된 이슈가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대한민국을 쥐고 흔들게 될지 몰랐다. 하지만 소설을 써내려 갈수록 왠지 소설이 아닌 현실을 기록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나쁜 검사들』은 작금의 현실에 대한 또 다른 형태의 기록이자, 김훈정 검사의 다짐처럼 부디 권력 기관이 다시 국민의 편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간절한 바람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짜 숨 막히게 재밌다!”, “현란한 말솜씨! 정신없는 티키타카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는 먼저 읽은 독자들의 말처럼 『나쁜 검사들』은 재미를 보장한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아직 우리에겐 풀어야 할 숙제가 있을 알려준다. 압도적 재미만큼이나 깊은 여운을 남기는 웰메이드 누아르 소설, 『나쁜 검사들』과 함께 무더위를 시원하게 날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