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하는 마음과 꾸지람 받을 걱정 사이에서
때는 1978년 눈 내리는 성탄 이브, 어린 순정이가 외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아빠의 일터인 신포시장 상인들의 가족 송년회에 가려는 것입니다. 추우니까 든든히 입고 오라는 엄마의 전화를 끊고 집을 나서며 마당의 반려견 향순이에게 인사를 건네는데, 향순이가 이상합니다. 밥도 안 먹고 기운도 없고 오돌오돌 떠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엄마 아빠가 기다릴 거야. 얼른 갔다 올게.” 하고 돌아서는 순정이, 그러나 이내 발길을 돌립니다. 지금과 달리 개는 마당에서 키우는 게 당연했던 시절이지만, 몸이 안 좋아 보이는 향순이를 그대로 둘 수 없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향순이가 못 들어가게 문단속을 잘하고 오라는 엄마의 당부가 있었던 터입니다.
‘어떡하지? 엄마가 집 안에 들이지 말라고 했는데.’ 향순이랑 거실에서 놀다가 꽃병을 깬 적도 있고, 새로 산 아빠 구두를 물어뜯은 일도 있었으니까요.
눈발은 점점 커지는데, 향순이를 배려하는 마음과
꾸지람 받을 걱정 사이에서 망설이던 순정이가
택한 것은 배려였습니다.
“에잇! 어쩔 수 없지 뭐!”
조그만 몸으로 향순이를 번쩍 안고 집으로 들어간
순정이, 내친김에 안방에 커다란 방석을 깔고
향순이를 누인 다음 이불까지 덮어 줍니다.
“따뜻하니까 곧 괜찮아질 거야.
대신 어지럽히면 안 돼. 알겠지?”
꾸지람을 무릅쓴 ‘대단한 결심’을 한 것입니다.
‘대단한 결심’이 가져다준 ‘대단한 풍경’
그제야 순정이는 쏟아지는 눈발을 뚫고
송년회가 열리는 아빠의 가게로 달려갑니다.
하지만 왁자지껄한 어른들과
덩달아 신이 난 친구들 속에서
순정이는 홀로 즐겁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케이크도 통닭도 그다지 맛있지 않습니다.
‘향순이는 잘 있을까? 얌전히 있어야 할 텐데...’
향순이도 걱정되고 꾸지람도 걱정되는 어린이의 마음인 것이지요.
이윽고 길게만 느껴졌던 송년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느새 눈이 발목까지 쌓여 있는데 “우리 눈사람 만들까?” 모처럼 들뜬 아빠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순정이는 냅다 집을 향해 달려갑니다. “조심해! 넘어지겠다.” 엄마 아빠의 발걸음도 빨라져 서둘러 집에 도착했을 때, “어머나!” 방문을 연 세 식구의 눈앞에는 ‘대단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어떤 풍경이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