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비판 정신이 강한 이야기꾼이자 ‘낙지네 개흙잔치’(동시집 이름)를 노래하는 시인이 되었다. 문학을 넓게 알기에 소설도 방법을 궁리하는 작품들을 쓰면서, 그렇게 이야기로 삶을 만들고 또 넘어서고 있다.
- 최시한(작가, 숙명여대 명예교수)
머구리는 잠수부를 뜻하는 말로,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 여섯 편 중 「머구리에서 무거리로」의 주인공 ‘배건준’의 과거 직업이다. 젊은 시절 교역자가 되기 위해 착실히 준비하던 주인공이 잠수사고 후 장애인으로서의 삶을 감당해야 했던, 상실과 좌절로 점철된 과거 이야기와, 무의탁 노인에게 연탄을 나누는 봉사활동 현장에서 사랑했으나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했던 탱숙을 만나게 되는 현재 이야기가 교차하는 방식, 즉 “과거와 현재의 교차가 빈번한 구성”으로 전개된다.
이 책의 수록 작품에서 ‘과거’는 “상실과 좌절을 겪은 개인 이야기”, 즉 “교역자가 되려는 길이 편견이나 제도의 벽에 막히며(「죄 없는 사탄」, 「머구리에서 무거리로」), 한국전쟁, 일제의 지배 같은 역사적 질곡에 영혼을 바친 사랑과 헌신이 가로막힌다(「바람 장벽」)”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그러므로 주인공들이 겪는 ‘현재’는 “그것을 반추하는 노여움의 시간”이요, “체념의 시간”이다. 최시한 문학평론가는 『머구리에서 무거리로』에서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구성은, “과거의 좌절에 매몰되지 않고 그것을 기록하고 증언하며 삶을 지속하려는 의지의 소산”이라고 평가한다.
“여기 수록된 작품들을 관통하는 사상은 비리(非理)를 거부하는 비판정신으로 보인다. 작가는 현재 한국의 사회적 질병들, 곧 이른바 ‘빨갱이’를 만들어 내는 정치적 음모, 아집으로 뭉친 패거리주의, 인간성을 뭉개 버린 배금주의, 기독교단의 보수성 등이 얼마나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가를 ‘이야기’로 풀어 낸다.”
- 최시한 문학평론가, 작품해설 중에서
1954년생인 그는 5세 되던 해 낙상사고로 척추 장애를 갖게 되었다. 40세 되던 해(1993년)에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제비」로 등단한 이후, 그해 아동문예 신인상을 받았다. 2004년 『낙지네 개흙 잔치』(창비)를 펴내 우수문학도서(2005년) 선정되었고, 이 책으로 제12회 대전일보 문학상(2009년)을 받았다.
“동시 쓰는 사람이 무슨 소설이냐? 한 우물만 파도 제대로 하기 여러운데….”라는 명천 이문구 선생님의 우려에도 불구하도 “한 우물 파기에도 매우 부족한 재주를 보셨고, 감당하지 못할 체력이 염려스러우셨을 것”이라 생각하며 소설 집필에 힘써 200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거꾸로 흐르는 강〉이 최종심에 올랐다. 그후 “소설로 상처를 걷어 내야 할 것 같아” 쓴 『하늘까지 75센티미터』(아시아), 한국 근대사를 배경으로 삼은 세 권짜리 대작 『그림자를 벗는 꽃 1, 2, 3』(작은숲)을 발표했다. “단 한 분의 독자로도 내 소설을 읽고 공감해 주기를 바라는 매우 큰 욕심이 있다”고 밝혔던 안학수 작가는 『머구리에서 무거리로』 집필을 끝내고 출간을 기다리던 중 평생 천형처럼 따라다니던 척추 장애로 인한 폐질환으로 입원했다가 안타깝게도 2024년 8월 3일 우리 곁을 떠났다.
〈작품해설〉
안학수는 동시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장편소설도 『하늘까지 75센티미터』, 『그림자를 벗는 꽃』 두 편을 내었는데, 후자는 3권으로 된 야심작이다. 시인이 말을 줄이고 줄여서 거기 박힌 보석들을 갈아 낸다면, 소설가는 말을 늘이고 늘여서 삶의 줄거리를 형성하고 또 경험을 어떤 모습으로 형상화한다. 줄거리가 있는 것과 없는 것, 안학수는 대조적인 그 두 갈래의 글을 평생 함께 지어온 것이다. 이는 그리 흔한 예가 아니다. (중략)
여기 수록된 작품들을 관통하는 사상은 비리(非理)를 거부하는 비판정신으로 보인다. 작가는 현재 한국의 사회적 질병들, 곧 이른바 ‘빨갱이’를 만들어 내는 정치적 음모, 아집으로 뭉친 패거리주의, 인간성을 뭉개 버린 배금주의, 기독교단의 보수성 등이 얼마나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가를 ‘이야기’로 풀어 낸다. 여기서 주목되는 점은, 삼인칭 인물 시각적 서술, 즉 서술자가 주로 인물(초점자)의 시선과 생각을 따라가는 삼인칭 서술방식을 취하면서도, 그 인물을 긍정적 인물로만 설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인물은 서술자, 나아가 작자를 대변하기 쉬우므로 일종의 주권적 입장에 서는 경우가 많은데, 「조현병자의 아가페」, 「죄 없는 사탄」 등에서는 자신의 잘못이 노출되기도 하며 어떻게든 객관적이고자 노력하는 태도를 보인다. (중략)
여기서 작가가 동요 시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적이 놀라게 된다. 아무리 보아도 동요의 세계와 이 작가의 소설 세계는 거리가 멀어 보이기 때문이다. 소설에도 시적인 것을 추구하는 ‘서정적 소설’이 있는데, 앞에서 보았듯이 그의 작품들은 세계와 대결하는 서사성이 강하다. 무릇 서정성이 자아와 세계의 동화同化를 다룬다면 서사성은 자아와 세계의 갈등을 그린다. 그는 흡사 세상의 진창 속으로 들어가 하늘을 응시하는 듯하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문학에 서정과 서사가 있음은, 인간의 영혼과 삶에 하나가 되려는 것과 갈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다 존재하기 때문일 터이다. 안학수는 두 가지 모두를 추구한다. 아니, 누구보다 큰 어려움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다운 삶을 가로막는 발 딛고 선 현실의 질곡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는 비판 정신이 강한 이야기꾼이자 ‘낙지네 개흙잔치’(동시집 이름)를 노래하는 시인이 되었다. 문학을 넓게 알기에 소설도 방법을 궁리하는 작품들을 쓰면서, 그렇게 이야기로 삶을 만들고 또 넘어서고 있다.
- 최시한(작가, 숙명여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