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 상상력과 유쾌한 캐릭터의 환상의 컬래버!
누구보다 열정적이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K-민원팀’의 스펙터클 민원일지
우리는 지난 35년여 동안 외계인과 교류해왔다. (…) 그리고 이들 중 일부가 여전히 남아 우리 주변에 뒤섞여 살고 있다. _본문에서
공무원이 되어 서울 시민에 봉사하고, 매달 학자금 대출을 갚으며 퇴근 후에는 가끔 운동을 하는 여유로운 삶. 그런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꿈꿔온 새내기 공무원 공필연은, 출근 첫날부터 외계인 전담 민원팀에 배정되며 꿈꿔왔던 삶에서 한 발짝 멀어진다. 게다가 부푼 기대를 안고 만난 팀원들은 어딘가… 다가가기가 매우 어려워 보인다. 새로운 팀원이 된 자신은 안중에도 없이 주구장창 전화만 한다든가, 태블릿 PC에만 열중하는 식이다. 갑작스러운 근무지 이동으로 심란한 팀원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공필연은 불편한 마음을 내색하지 않고 함께 이동하지만, 창밖 풍경이 도로에서 한강 속으로 바뀌자 그것 또한 어려워진다. 자동차인 줄 알았던 그것은 잠수정으로 변하고, 어느덧 자신은 용왕에게 간을 내어주러 가는 토끼가 된 듯한 이 황당한 상황에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공무원의 삶을 꿈꿔온 공필연은 상상해본 적 없을 것이다. 예산 5조 3,000억을 들여 지으려던 한강 속 (버려진) 테마파크가 자신의 첫 사무실이 될 줄은. 그리고 지금까지 겪은 일들이 앞으로 겪을 일들의 예고편에 불과할 줄은.
처음에는 외계인이니 한강 속 기지니 하는 것에 당황했다. 그러나 지금은 무엇보다 이제껏 나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왔을, 매우 특별해 보이는 사람들과 내가 무엇을 함께할 수 있을지 난감할 따름이다. _본문에서
보금자리를 잃고 낯선 곳에 정착한 이방인들
범우주적 인류애를 일깨우는 따뜻한 SF소설
『한국우주난민특별대책위원회』는 지난 35년간 대한민국에 ‘플라인’이라는 외계인들이 우주 난민으로 거주하고 있으며 정부에서는 이들의 편의를 돕기 위해 특수조직인 민원팀을 만들었다는 독특한 설정을 따르고 있다. 그리고 소설은 새내기 공무원 공필연이 이 특수조직에 차출되며 시작한다.
공무원 합격부터 팀 배치, 사무실 입성까지 우여곡절과 파란만장의 연속이었지만 본격 업무에 착수하자 공필연을 포함한 서울시 민원팀 소속 4인방은 플라인의 민원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플라인 구출을 위해 한강 입수는 기본이요 경비행기 섭외는 예삿일에다, 플라인의 외형부터 성격, 변이, 주식(主食), 특징까지 꼼꼼히 살피고 기록하며 연구한다.
이 소설을 더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서는 플라인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플라인의 피부는 수많은 촉수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은 키는 40cm에서 2m까지 다양하다. 잎사귀 같은 귀는 머리 위에서 팔랑거리며 외부 소음에 반응한다. 만약 당신이 플라인의 모습을 처음 본다면 낯선 외모에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의 삶을 찬찬히 살펴본다면, 그들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걸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약간 돌발적이고 좀 많이… 즉흥적이긴 하지만.
매일같이 파티를 즐기는 플라인들은 아무 걱정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 이들은 갈 곳 없이 떠돌던 우주 난민 신세다. 보금자리였던 행성이 폭발하자 일부는 대한민국에 정착했고 나머지는 새로운 별을 찾아 지금도 여전히 이 광활한 우주를 여행 중이다.
“만약 지구가 사라진다면, 저는 아마 (…) 무기력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요.”라는 공필연의 말처럼, 그들이 느꼈을 슬픔과 두려움, 상실감과 허무함을 우리는 감히 상상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야말로 ‘세상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음에도 플라인들은 공포에 잠식돼 패닉에 빠지거나 자기연민에 휩싸여 자신들의 처지를 동정하지 않는다. 그저 2008년도 히트곡 메들리를 틀어놓고 신나게 춤을 추며 현재의 즐거움에 집중할 뿐이다. 이들의 놀라운 회복 탄력성을 보고 있자면 지금 내가 겪는 어려움은 한결 가볍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매력만점 캐릭터와 신선한 설정,
위트 넘치는 유머 뒤에 숨은 날카로운 통찰
이 소설을 발표한 제재영 작가는 정식 출판은 처음이지만 꽤 오래전부터 혼자 소설을 쓰며 꾸준히 실력을 닦아온 재야의 고수다. 매일 밤 물류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작가는 작품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마침내 그 각고의 세월에 응답하듯 새로운 감각으로 무장한 이 작품을 세상에 내보일 준비를 마쳤다.
『한국우주난민특별대책위원회』의 매력 포인트는 유쾌한 세계관과 매력만점 캐릭터이지만 이 소설의 힘이 단순히 세계관과 캐릭터에서만 나오지는 않는다. 이 소설이 재미를 넘어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날카로운 현실인식과 이를 관통하는 명랑한 해학에 있다. 수조 원을 들여 만든 한강 속 테마파크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며 모르쇠로 일관하는 감사장 풍경이나, 최신식 수중바이크를 만든 엔지니어들을 제쳐두고 이들의 공로를 공평히 나눠 갖는 “초대받지 않은 인사”들의 모습은, 현재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낯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광활한 SF적 상상력이 현실을 소환하는 순간 작품의 힘은 배가되는 법. 작가 제재영이 써내려갈 새로운 세계가 앞으로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자, 이 책을 계기로 우리가 그녀의 이름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