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챙기랴 지렁이 구하랴, 바쁘다 바빠!
“5초만 기다려 주세요! 얼른 교과서 가져올게요!”
비가 많이 내린 다음 날 형주는 쉬는 시간마다 지렁이를 살리러 다니느라 무척 분주하다. 흙 속에 물이 차서 숨을 쉬러 잠시 길가에 나온 지렁이들이 흙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이다. 지렁이를 그대로 두었다가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발에 밟힐 수도 있고, 날이 개어서 해가 쨍쨍 비치면 말라 죽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오늘도 쉬는 시간에 길가의 지렁이를 화단 흙으로 옮겨 주느라 복도 사물함에서 교과서를 가져오는 걸 깜빡하고 말았다. “5초만 시간을 주면 재빨리 교과서를 가져올 수 있다”고 선생님께 호언장담을 했지만 역시나 돌아오는 건 꾸지람이었다.
1학년 때만 해도 이 정도 일은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선생님도 너그러이 넘어가는 편이었고, 선생님께 그 일을 전해 들은 엄마도 “우리 형주 건강하게 잘 크고 있는 거야!” 하며 호탕하게 웃어넘기곤 했다. 하지만 2학년이 되고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지렁이를 구해 주거나 때 이르게 나타난 별무늬꼬마거미를 살펴보느라 수업 준비를 제대로 못 하자 선생님의 꾸중은 물론 엄마의 걱정도 나날이 깊어졌다. 그러다 결국 형주 엄마는 중대 결정을 내린다. 형주의 성향과 관심사를 좀 더 배려해 줄 수 있는 새로운 학교를 찾아 나서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형주는 지금 학교도 싫지 않다. 구해 줄 지렁이도 많고, 5초만 시간을 주면 교과서도 재빨리 가져올 수 있고…… 아니, 그냥 딱히 싫어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각도, 좋아하는 것도, 속도도 모두 달라요!
그런 우리가 학교라는 공간에서 즐겁게 함께 생활하려면?
학교를 옮기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심란한 밤을 보낸 다음 날 형주는 일찍 등교해 제일 먼저 교실에 들어선다. 그런데 교실엔 담임 선생님이 아니라 웬 낯선 사람이 있다. 알고 보니 담임 선생님께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서 임시로 반을 맡게 된 ‘최정욱’이라는 선생님이다. 최정욱 선생님은 아이들의 고주알미주알 일상을 귀담아들어 줄 뿐만 아니라 형주의 관심사에도 진심으로 귀를 기울인다. 게다가 형주의 설명을 듣고는 ‘지렁이 팬클럽’을 자청하며 함께 열심히 활동해 보자고 독려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형주는 우선 학교생활의 기본적 규칙을 지켜야 정말 지키고 싶은 것을 제대로 지킬 수 있다는 중요한 사실도 깨닫게 된다.
아이들은 제각기 발달 속도가 다르며, 생각과 관심사, 행동 등도 모두 다르다. 이런 아이들이 학교라는 한 공간에서 어울려 생활하려면 기본 규칙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조금 느리거나 다소 산만한 아이들은 기본적인 규칙이라도 따라가기 버거울 수 있다. 실제로 학교에서 모든 아이를 제각각 맞춤형으로 이끌어 나가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마냥 지켜보거나 그대로 방치할 수도 없는 일! 좀 더 배려 깊은 주변의 관심과 세심한 손길이 있다면 조금 더 수월하게 문제가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사랑스러운 형주가 자신의 관심사를 지켜나가면서도 ‘지렁이 팬클럽 회장’으로서 학급의 일원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했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