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균열된 세계를 주유하며 완고했던 세계의 흔적을 발굴해가는 작가
완고한 세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응시의 감각을 지닌 자가 아닌, 이미 균열된 세계 속에서 완고함의 흔적을 온몸으로 발굴해가는 작가. 소설집 『재구성』 『겨울에 대한 감각』,장편소설 『달력 뒤에 쓴 유서』를 펴낸 민병훈 작가의 신작 중편소설이 문학실험실 <틂-창작문고 시리즈> 22권으로 출간되었다. 민병훈 작가는 “죽음, 상실 등 인간 내면에 자라는 근원적 어둠을 언어적로 형상화한 이미지”를 통해 우리의 삶의 자리를 역설적으로 반추해온 작가이자, 보통의 사람이 “자신의 현재를 의탁하고 스스로를 분석하며 미래를 견”디는 데 반해 “민병훈의 소설은 기억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방황을 수리”(노태훈)해온 작가이다. 그리하여 그는 “한 개인의 모색과 불안을, 자신의 몫으로 치러야만 하는 시간과의 무한한 대화”(양선형)에 나서는데, 신작 중편소설『금속성』은 사건과 세계라는 망루에서 시간과 의미라는 들보를 제거함으로써, 주저앉은 채 수습할수도 극복할수도 없는 ‘지금-여기’의 ‘나’와 ‘우리’의 실존을 극명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이 표면상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는 듯하나, 그 속에서 발견하는 진짜 디스토피아는 진즉에 도래해 있으며 이미 높은 밀도로 압축되어가고 있는 우리 자신이다. “GPS가 세계의 구석구석을 밝혀주고 있는 시대에, 지도에도 없는 소설”(박혜진)을 구축해온 민병훈이 그려놓은 이 미지의 세계는, 끔찍하지만 유러스럽고 엉뚱하지만 참담한 나-현실의 분명한 이름이다.
모종의 방식으로 거기에 혹은 여기에 있는 우리의 삶
인생이 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느낌은 무엇일까? 이것 다음에는 저것이 와야 한다. 그런데 이것 다음에 다른 어떤 것이 온다. 마치 다리가 달린 뱀처럼. 고양이가 되려다 심각하게 어긋나버린 뜻밖의 생물처럼. 또는 이상하게 조립된 장난감처럼. 그것들은 어떻게 보면 웃기고 어떻게 보면 귀엽고 어떻게 보면 슬프다. 온갖 우스꽝스럽고 슬픈 일들이 일어나는 이 소설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민병훈은 우리에게 글을 쓰는 시간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시간 전체가 곧 “폐품을 해체하거나, 조립해서 넘겨주거나, 다른 기계 물품과 교환하는 시간”(115쪽)임을 보여준다. 어느 수상한 컨테이너 작업실에서 깡! 깡! 하는 소리가 들려올 때 그곳에서 무엇인가가 제대로 만들어지고 있는지, 아니면 누가 자신의 손등이나 발등을 찧고 있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괜찮은 일일 텐데, 이제 우리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이 거기에 누군가의 삶이 있으며, 그 삶이 우리의 삶과 모종의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_강보원 시인의 추천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