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재하는 인물이 쓴 마술적인 수기를 읽는 듯해
자연스럽게 몰입이 되었다.” _박서련(소설가)
“탈출 불가능한 자본주의사회 안에서 절망하기보다
어떻게든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내려 한다.” _강지희(문학평론가)
레트로한 감성의 ‘힙지로’, 주술적인 매력의 ‘아프리카박물관’
그 모두에 스며든 자본주의라는 어둠,
그곳을 가로지르는 두 사람의 강렬한 버디무비
소설은 에스의 집으로 발신자 미상의 편지 봉투가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봉투 안에는 지금으로부터 십수 년 전인 1990년대 초 유행한 의류 브랜드의 홍보 카피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가 쓰인 광고 전단지가 들어 있다. 난데없이 수수께끼 같은 전단을 받아든 에스는 엄마를 통해 그것이 아빠가 보낸 메시지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에스의 아빠는 을지로의 인쇄 골목에서 수십 년간 인쇄소를 운영해온 인쇄공으로, 외환위기가 발생하고 인쇄 산업이 쇠퇴하자 막대한 빚을 지게 되었다. 그후 빚쟁이들을 피해 종적을 감췄고, 그런 아빠를 에스가 찾아 헤맨 지 사 년째였다. 처음 전단이 도착한 이후 에스의 집으로 ‘여러분, 부자 되세요’ ‘사랑해요, 엘지’ 등의 카피가 적힌 광고 전단이 연이어 날아든다. 그것을 보낸 사람이 아빠가 맞는다면, 갑자기 왜, 어떤 의미로 그런 ‘레트로 전단’을 보낸 것일까?
한편, 에스는 우연히 홍대의 한 클럽에서 흑인 남성 레무를 만나 그와 가까워진다. 그는 한국에 파견 온 마사이족 예술단원으로 경기도 양주의 아프리카박물관에서 일하고 있다. 에스는 그가 박물관의 관장에게서 여권을 돌려받지 못한 채 삼 년째 근로 기간이 연장되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계약직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생계를 꾸려온 에스는 레무의 처지에 공감하며 그를 돕기로 결심한다. 에스와 레무 두 사람이 함께 을지로의 인쇄 골목을 누비며 에스의 아빠의 실종을 추리하는 여정, 레무가 박물관장의 착취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펼치는 분투는 그 자체로 흥미진진한 한 편의 버디무비이다.
또하나의 이채로운 점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요 공간 배경들이다. 에스가 근무하는 홍제동의 피자 가게, 그 인근에 위치한 엄마의 옷가게, 박물관에서 도망쳐나온 레무가 임시로 머무는 방 탈출 게임방 등은 일터이자 생활공간인 우리네 평범한 동네의 한 귀퉁이를 생생하게 떠올리게 한다. 특히 을지로의 쇠락한 인쇄 골목의 풍경은 힙스터의 성지라 불리는 이른바 ‘힙지로’와 대비되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무너진 자본주의사회의 한 단면을 상기시키며 비애감을 자아낸다. 주술성과 원시성으로 넘실거리는 아프리카 원주민의 문화예술 작품들이 보존된, 자본주의사회와 가장 먼 것처럼 보이는 시 외곽의 아프리카박물관조차 불공정한 불법 고용 계약이 성행하는 공간이라는 점 또한 의미심장해 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렇게 바삭한 카사바칩』은 날카롭고도 서늘한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네가 궁금해지면 카사바칩을 먹고 있다고 생각할게”
이 세계에서 탈출하고 싶을 때 떠올리게 될
단 하나의 사람, 단 하나의 이야기
『이렇게 바삭한 카사바칩』의 미덕은 그러한 주제의식을 경쾌한 울림을 주는 특유의 제목처럼 가볍고도 청량하게 전함으로써 도리어 독자에게 긴 여운을 남긴다는 점이다. ‘카사바’란 아프리카 등지에서 주식으로 먹는 “고구마 비슷한 작물”(38쪽)이다. 레무는 흑단나무로 깎은 목각 인형을 보물처럼 가지고 다니는데, 실제 카사바를 조각해 만든 것이 아님에도 그것을 ‘카사바 인형’이라 부른다. “먼 여행을 떠날 때” “카사바 인형을 두고”(39~40쪽) 오면 그것이 자신을 대신하여 남겨진 사람들을 지켜준다는 마사이족의 주술을 믿기 때문이다.
에스와 레무는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카사바 인형이 되어주었다는 것, 서로가 서로를 구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험난한 여정 끝에 편의점에 마주앉은 두 사람은 “캔맥주”와 함께 “카사바칩”(224쪽)을 먹는다. “파삭파삭 파사삭 파삭”(211쪽) 하고 부서지는 카사바칩은, 에스와 레무 두 사람이 서로의 안녕을 비는 둘만의 애틋한 기도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바삭한 카사바칩』은 우리네 가족, 친구, 연인, 나아가 낯선 이방인의 안녕을 기원하게 하는 귀한 이야기이다.
“너도 떠나고 싶으면 이걸 두고 떠나. 카사바 인형이 있는 곳에서 만나면 되니까.”
“신박한 해결책이네. 좋아. 좌표 같은 거라고 해두자.”
서로의 좌표를 안다는 것은, 뭐랄까, 우주를 향해 열려 있는 내 방의 와이파이 신호 같다고 할까. 부질없게 들리지만 아예 가망 없는 것도 아니다. 살다보면 만나고 싶을 때도 있을 테고, 그때 기적처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누가 알겠나. 서로의 세계로 탈출하고 싶을 때 우연히 여행 경로가 겹칠지. _212쪽에서
* 문학동네 플레이 시리즈
‘읽는’ 소설에서 ‘보는’ 소설로
국내 최고의 작가들이 만들어나가는
무수한 취향의 테마파크!
흥미진진하고, 몰입감 높으며, 독자의 마음에 감동을 남기는
웰메이드 장편소설의 퍼레이드가 펼쳐집니다.
문학동네 플레이 시리즈는 ‘플레이(PLAY)’라는 이름에서 확인할 수 있듯, 소설 읽기를 ‘놀이’로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장르를 망라하는 문학 테마파크를 지향한다. 또한 한 장면 한 장면 허투루 쓰이지 않은 감각적이고 탄탄한 장편소설을 엄선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재생’함으로써 오감을 통해 구체적으로 체험하는 문학을 선보이고자 한다. 앞으로 문학동네 플레이 시리즈는 평단과 독자에게 인정받는 국내 최고의 작가들과 함께하며 재미와 감동을 함께 전하는 뛰어난 작품들로 채워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