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편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어요”
시시각각 판단하고 사정없이 심판하는 잡 인터뷰의 세계!
함정을 파는 자와 함정을 피하는 자의 끊임없는 줄다리기
첫 소설집 《어느 날 은유가 찾아왔다》로 2022년 대산창작기금을 받고, 제10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최우수상을 수상한 장편소설 《안녕, 끌로이》를 쓴 박이강의 신작 단편소설 《잡 인터뷰》가 위즈덤하우스 위픽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경력 13년 차 마케터 ‘리아’는 갑작스러운 회사의 인수, 합병으로 인해 해고될 위기에 처한다. “잘리기 전에 다른 배로 갈아타”기 위해 두 군데 회사에 지원하지만 최종 면접에서 고배를 마시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온 세 번째 회사와의 면접에서 앳된 얼굴에 레게 머리를 하고 손가락과 손목에는 문신이 있는 면접관 ‘TT’를 만난다. 미국에서 자라 한국어가 서툴다는 TT는 “리아, 혹시 게임 좋아해요? 어떤 캐릭터 좋아해요? 만약 유명 게임 캐릭터가 될 수 있다면 어떤 캐릭터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그 이유는 뭐죠?”라는 질문으로 면접을 시작한다. 판에 박힌 잡 인터뷰 같은 건 싫다고, 뻔한 자기소개 대신 “편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다”는 TT. 속이 좋은 건지 고도의 심리전을 시도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리아는 조심조심 TT의 질문들을 건너간다.
잡 인터뷰는 기업 세계의 두 축인 고용인과 피고용인을 대표하는 두 개체가 각자의 이해관계를 위해 벌이는 탐색전이고, 여기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야말로 기업 세계의 속성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_59쪽 〈박이강 작가 인터뷰〉
여러 글로벌 기업을 거쳐 외국계 투자은행 한국법인 이사로 재직한 경험이 담긴 《잡 인터뷰》는 명확한 위계가 설정된 면접관과 구직자라는 관계에서, 이 상황을 불공정하고 불합리하게 느끼면서도 면접관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애써야 하는 구직자의 긴장감과 절박함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밥그릇을 쥐고 있는 상대의 질문에는 “편하게 그리고 솔직하게”는커녕 인간 대 인간으로 대답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정답과 오답이 명백히 나뉘어 있으나 채점 기준은 오직 면접관만 알고 있다.
“이력서에 다 나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짧지만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는 표현과 메시지를 고민해야 하는” 자기소개는 어떠한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그 거대한 질문에 답하라고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낯선 타인 앞에서 사정없이 쪼그라들” 때, 작품 속 TT처럼 “뭐, 엿 같은 일은 늘 일어나죠”라고 중얼거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삶은 언제나 예측 불가능하고 부조리한 일들로 가득하고, 시시각각 판단하고 사정없이 심판하는 직장 생활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잡 인터뷰의 연속이다. 그러나 〈작가의 말〉에서 밝히듯 “낭비하고 소진했던 시간이었기에 차오르고 얻었던 게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도 찾아온다. 《잡 인터뷰》는 불공평하고 권위적인 면접에서 “내 인생의 현주소를” 돌아보고 “나의 욕망과 가능성의 크기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찾는다. 비록 월급쟁이로 사는 삶에 극적인 변화는 없을지라도, “단순히 돈을 버는 것 이상의 의미와 재미를” 찾고 그 “과정에서 나다움을 잃지 않고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엿 같은 일은 늘 일어나고, “원래가…… 페어하지 않은” 것이 인생이라면 우리는 이 타협을 무기력한 패배가 아닌 일말의 승리로 다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단 한 편의 이야기’를 깊게 호흡하는 특별한 경험
위즈덤하우스는 2022년 11월부터 단편소설 연재 프로젝트 ‘위클리 픽션’을 통해 오늘 한국문학의 가장 다양한 모습, 가장 새로운 이야기를 일주일에 한 편씩 소개하고 있다. 구병모 〈파쇄〉, 조예은 〈만조를 기다리며〉, 안담 〈소녀는 따로 자란다〉, 최진영 〈오로라〉 등 1년 동안 50편의 이야기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위픽 시리즈는 이렇게 연재를 마친 소설들을 순차적으로 출간하며, 이때 여러 편의 단편소설을 한데 묶는 기존의 방식이 아닌, ‘단 한 편’의 단편만으로 책을 구성하는 이례적인 시도를 통해 독자들에게 한 편 한 편 깊게 호흡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위픽은 소재나 형식 등 그 어떤 기준과 구분에도 얽매이지 않고 오직 ‘단 한 편의 이야기’라는 완결성에 주목한다. 소설가뿐만 아니라 논픽션 작가, 시인, 청소년문학 작가 등 다양한 작가들의 소설을 통해 장르와 경계를 허물며 이야기의 가능성과 재미를 확장한다.
시즌 1 50편에 이어 시즌 2는 더욱 새로운 작가와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시즌 2에는 강화길, 임선우, 단요, 정보라, 김보영, 이미상, 김화진, 정이현, 임솔아, 황정은 작가 등이 함께한다. 또한 시즌 2에는 작가 인터뷰를 수록하여 작품 안팎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1년 50가지 이야기 축제를 더욱 풍성하게 펼쳐 보일 예정이다.
∥위픽 시리즈 소개∥
위픽은 위즈덤하우스의 단편소설 시리즈입니다. ‘단 한 편의 이야기’를 깊게 호흡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이 작은 조각이 당신의 세계를 넓혀줄 새로운 한 조각이 되기를, 작은 조각 하나하나가 모여 당신의 이야기가 되기를, 당신의 가슴에 깊이 새겨질 한 조각의 문학이 되기를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