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m 심해로 가라앉은 118명의 승조원
2000년 8월 12일, 러시아 잠수함 쿠르스크가 바렌츠해에서 침몰하다
주인공 마야 카슨은 시애틀을 기반으로 하는 주간지 ‘더페이퍼’ 소속 기자이다. 2020년 어느 날, 동료 기자 아론 코왈스키에게 발간 20주년 특별호에 실릴 자신의 기사를 대신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 카슨은 예정에 없던 러시아로 간다. 그녀가 맡은 기사는 2000년 8월 12일 러시아 잠수함 쿠르스크가 바렌츠해에서 훈련 도중 침몰한 사고였다. 러시아 정부에서는 이미 20년 전, 사고 원인을 ‘불량 어뢰의 폭발’로 손쉽게 결론지은 다음 조사를 끝맺은 상황. 카슨은 코왈스키에게 반쯤 떠밀려 취재하게 된 사건에 대해 큰 열의가 없었고, 러시아에서 만날 인터뷰이와의 약속은 그저 형식적일 거라 생각했는데.
이 소설은 ‘쿠르스크 침몰 사고’라는 국내에는 생소한 재난을 미국 여성 기자의 인터뷰로 풀어내고 있다. 그녀가 만난 7명은 침몰 사고 당시의 고위층 장성부터 구조 작전에 참여한 남자, 남편을 잃은 부인까지 다양했다. 카슨은 사고를 둘러싼 이들의 침묵과 증언을 들으며 취재차 가볍게 왔다고 여겼던 이곳에서 뜻밖의 감정이 끌어 올랐다.
‘믿되 확인하라доверяй, но проверяй’
작가 홍기훈의 치밀한 자료조사가 돋보이는 이 소설은 다큐멘터리 이상의 현실 고증과 이를 기반으로 한 세밀한 묘사가 몰입감을 더한다. 특히 딱딱하게 느껴질 기술적 정보를 외부인과의 대화로 풀어가며 거부감을 없앤 것과 단순한 서술자로 여겨지던 주인공이 스스로 겪은 사건을 내보이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우리에게 들이닥쳤던 그간의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을 속수무책으로 떠올리며 사실과 진실의 퍼즐을 함께 맞춰가기 시작한다.
출판사 서평
1년 전 “[소설 투고합니다] 저는 왜 여섯 달 동안 정신을 잃었을까요.”라는 제목으로 메일이 왔었다. 메일의 내용을 훑어보니 자신이 집필에 몰두했던 시간이 자신의 인생에서는 통째로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고, 그런 표현이 과장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출판사 메일로 보통 일주일에 한두 편의 투고원고가 들어왔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_좋은 작품을 쓰는 신인 작가에 대한 목마름_에 원고를 다운 받아 화면에 띄웠다. 장편이었다. 대충 몇 장을 훑어보고 감이 좋은 득수 대표님에게 넘겼다. 득수와 결이 맞을 것 같은 작품이다 싶을 땐 섬세함보다 촉이 필요했다. 대표님은 곧바로 소설을 출력해 앉은 자리에서 300매 정도를 읽더니 작가를 만나야겠다고 했다.
한국의 젊은 남성 작가가
미국의 여성 기자 눈으로 본
러시아 잠수함 쿠르스크 침몰 사고
사건에 대한 탄탄한 자료조사와 사실적이고 촘촘한 러시아 배경과 인물들까지. 나이가 제법 있을 것이고 장편을 다룰 줄 아는 작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전화를 했을 때, 작가의 목소리가 너무 앳되었다. 간단하게 통화를 마치고 얼굴을 봐야겠단 생각에 포항으로 가볍게 놀러오라 던졌다. 그렇게 일주일 후 작가를 만났다.
책을 읽고 의심하라
작품을 읽고 작가를 처음 만나 들었던 생각이 ‘의심’이었다. 과연 이 작품을 저이가 썼을까. 누군가의 자료를 글을 영상을 베낀 것은 아닌가. 이후 출판사에서 한 일은 ‘쿠르스크 침몰 사건’에 관련된 도서와 영화를 찾아보는 것이었다. 행여 놓치는 것이 있지 않을까 전전긍긍대며.
그렇게 1년에 걸쳐 책이 만들어졌다.
2000년 8월 12일 러시아 잠수함 쿠르스크에 갇혀
바렌츠해의 108m 심해로 가라앉은 118명의 승조원
본질도 진실도 숨긴 채 사고수습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혼란을 막는 것이란 이야길 던지는 러시아 연방 해군 카운터 제독의 인터뷰를 읽으며, 사고 후 대통령이 유족들에게 전기요금도 전화요금도 받지 말라고 했다며 돈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는 친척의 말에 소릴 친 유가족 부인의 인터뷰를 읽으며, 침몰한 바다에 꽃다발을 던지며 죽은 아들을 떠올리는 어머니의 인터뷰를 읽으며 독자들은 기시감을 느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던 세월호 침몰 사고와 천안함 피격 사건을. 그리고 전 세계에서 되풀이되고 있는 전쟁과 폭력을. 소문과 음모를. 그것들에 가려 보이지 않는 개인의 슬픈 서사를.
“모두들 안녕,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Всем привет, отчаиваться не надо”
- 쿠르스크 승조원인 콜레스니코프의 유서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