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의 빛, 숭산 박길진을 다룬 연구
숭산(崇山) 박길진(朴吉眞)은 1915년 8월 15일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 영촌마을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 1891~1943) 대종사이며, 모친은 대사모(大師母)라 불리는 십타원(十陀圓) 양하운(梁夏雲, 1890~1973)이다. 본관은 밀양이고, 법명은 광전(光田), 법호가 숭산이다. 젊어서는 한때 ‘독보(獨步)’라는 필명을 쓰기도 하였다.
숭산은 두 말이 필요없는 원불교 교학(敎學)의 최고봉인 동시에 교단의 큰 지도자였다. 또, 1946년 유일학림 출범 이래 초급대학, 단과대학을 거쳐 종합대학에 이르기까지 학장, 총장을 맡아 오늘의 원광대학교를 있게 한 원광의 ‘큰 스승’이었다. 그가 걸었던 평생의 궤적, 그리고 그 궤적을 있게 한 사상과 이념은 모두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숭산이 원불교와 원광대학교의 역사에서 고귀한 자산이 되는 이유, 조건이 여기에 있다. 그가 생전에 남긴 저술은 한결같이 허명(虛名)과 공론(空論)이 아닌 실천적 교학을 온몸으로 체인(體認)한 참된 위인이었다는 사실을 웅변해 준다. 뛰어난 학문적 역량과 실천적 도량을 겸비한 참된 종교인이요, 구도자의 경건함으로 일생을 살다 간 ‘원광의 빛’이었다. 하지만, 숭산의 위업은 1986년 작고 이후 바람직한 방향으로 계승, 발전되지 못하고 거의 단절된 채 오래도록 매몰되어 있었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이루어져 있다. 제1부에서는 숭산의 평생 삶의 궤적을 서술하였고, 제2부에서는 숭산 내면의 사상, 그리고 그것이 표출된 저술 세계를 살펴보았으며, 제3부에서는 숭산의 만년과 후인의 추모·선양·논찬을 모아 정리하였다.
우선,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제1부 ‘숭산의 삶’은 숭산의 생애를 주로 연대기 순으로 기술한 것이다. 영광과 익산에서의 성장시절부터 시작해 서울과 도쿄에서의 수학(修學), 일제강점기 불법연구회와 숭산의 관계, 유일학림 이후 40년간의 교육사업, 그리고 교육사업과 병진한 종교·사회 활동 등 모두 5개의 장으로 나누어 숭산의 삶을 단계별로 기술하였다. 물론 이와 같은 설정이 이상적 준거는 아니라 할지라도, 자료의 섭렵을 통해 자연스레 도출된 결과이기에 숭산을 이해하는 하나의 이정표는 될 수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제1부에서 또 한 가지 특기할 것은 1956년의 세계일주 교화여행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는 점이다. 6·25 직후 고단했던 시대상황과 경제적 여건을 감안할 때, 당시의 세계일주는 이후 원불교 교화사업의 방향 설정과 파급 효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여정뿐만 아니라 그 결과와 의의에 대해서도 상세히 기술하였다.
제2부 ‘저술과 사상’에서는 숭산이 남긴 여러 형태의 저술과 언론 보도, 그리고 철학과 종교관 등 숭산의 내적 사상을 다루었다. 저자는 “이 분야에 대한 선행연구가 조밀하지 않은 데다, 필자의 역량 부족으로 처음 의도한 소기의 성과, 수준에 끝내 이르지 못한 채 제2부를 마무리 지어 못내 아쉬움이 크다”며 “장차 숭산의 종교사상, 교육철학 분야에 대해 더 심도 있는 연구가 이어지길 고대한다.”라고 전했다.
숭산 서거와 후인의 추모·논찬을 다룬 마지막 제3부 ‘원광의 빛’은 이 책의 에필로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는 먼저 1980년대에 등장한 전두환 신군부의 독재로 야기된 시대적·사회적 혼란과 숭산 서거 양자 간의 상관성을 논급하였다. 곧 숭산의 죽음에 내재된 ‘공도자(公道者)’로서의 헌신과 희생의 의미를 살펴본 것이다. 다음으로, 숭산이 남긴 기록과 지인들의 증언을 통해 그의 고결한 품성과 일상에서 보인 실천적 규범성을 제시한 뒤, 후인들에 의해 이루어진 추모와 선양, 그리고 논찬(論贊)을 모아 정리함으로써 숭산이 후세에 드리운 여운을 기술하였다. 끝으로, 평전에 임한 나의 소회와 더불어 숭산이 남긴 교훈을 제시해 봄으로써 장차 ‘숭산학’의 발흥을 촉구하면서 이 책을 마무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