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했던 것들이 비로소 가능해지는 사랑의 미래
지나가는 순간일지라도 함께하는 지금
“사마귀 같은 여자애를 좋아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김지연은 이번 작품 『지나가는 것들』을 통해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마음’ 로맨스×퀴어를 키워드로 하여 뜻밖의 만남과 천진한 예언으로 시작된 두 여자의 연애 사정을 펼쳐 보인다. 느껴지지 않았던 미래가 느껴지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여 사랑이 느리게, 하지만 끈기 있게 뿌리내리는 과정을 그린다. 파도처럼 모든 파문이 휩쓸고 간 자리에서 혼자가 된 ‘나’는 어플을 통해 “사마귀 같은 여자애”(73쪽) ‘영경’과 만난다. 뿐만 아니라 영경은 “촉이 좀 좋”(16쪽)은 여자애였다. ‘나’가 전 애인을 잊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아맞힌 영경은 ‘나’가 한 번도 분명하게 감각해본 적 없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느껴지네, 미래가…….”(16쪽)
모두가 버리고 간 서늘한 빈집에 들어가 불을 켤 때면 오롯이 혼자인 걸 들키는 기분이 들어 더 외로워지곤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걸 겪어냈으므로 다음으로 무엇이 와도 크게 놀라지 않을 자신이 조금 붙었다. 그럼에도 영경은 내게 꽤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11쪽)
죽을 것 같으면 죽기 싫어서 먼저 죽은 척하는 사마귀처럼 지레 겁을 먹으며 “수동태의 삶”(43쪽)을 살아온 ‘나’와 조금씩 이상한 데가 있는 영경의 미지근한 만남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언제 ‘이쪽’이라는 걸 알았냐는 영경의 질문에 ‘나’는 ‘지희 이모’를 떠올린다. ‘나’가 초등학교 고학년일 때 ‘나’의 집에서 하숙했던 지희 이모는 “쇼트커트, 워커화, 오토바이, 술 담배, 문신, 도장공”(38쪽)을 모두 하는 여자였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알게 된다. 여자가 그런 것들을 해도 된다는 사실을. 이번엔 ‘나’가 영경에게 언제 ‘이쪽’이라는 걸 자각했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돌아온 영경의 대답은 ‘나’가 자리를 박차고 도망가고 싶게 만든다. “사실 난 아직 잘 모르겠어.”(33쪽) 과연 미미한 불씨를 품은 이 연애는 순탄하게 타오를 수 있을까?
무수한 빛깔의 파문이 파도처럼 휩쓸고 간 자리
뜻밖의 만남과 천진한 예언으로 시작된 연애의 사정
하지만 그 사람이 영경이라면. 영경의 그 시간을 함께 있어주고 싶었다. 자신의 마음을 확인한 영경이 나를 떠나버리게 된다고 하더라도. 왜 그런 최악의 경우만 먼저 떠올리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진짜로 닥칠지도 모를 일이 너무 무서워서 미리 예방주사를 놓는 건지도. 어차피 이 모든 시간은 지나가버릴 것이고 다가올 일들을 미리 당겨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지나가기 전에는, 지금은 함께 있고 싶었다. (73쪽)
『지나가는 것들』은 이십대 초반인 두 여성 주인공의 사랑과 불안, 초조와 체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는 미래에 대한 전망을 김지연만의 은근한 방식으로 다룬다. 끝내는 지나가버릴 순간일지라도 함께하는 ‘지금’을 선택하는 인물을 경유하며 지금 이 자리에서 발견한 사랑의 미래를 그려낸다. 작품에 대한 작가의 소탈한 고민과 숨겨진 뒷이야기는 「작업 일기 : 사마귀는 죽은 척한다」에서 살펴볼 수 있다.
‘달달북다’는 12명의 젊은 작가가 로맨스×칙릿(김화진, 장진영, 한정현), 로맨스×퀴어(이희주, 이선진, 김지연), 로맨스×하이틴(예소연, 백온유, 함윤이), 로맨스×비일상(이유리, 권혜영, 이미상)의 테마를 경유해 각별한 로맨스 서사를 선사한다. 독자들은 오늘날 각기 다른 형태로 발생하는 사랑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