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유희, 리듬감, 유쾌함으로 전달되는 시적인 즐거움의 동시집!
작고 소중한 것들을 통해 본 사람들의 사랑이 담긴 따듯하고 울림이 있는 동시들!
1부에서 시인은 떼루가 보는 가족의 이야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개, 무시〉의 시에서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정해진 규율을 개무시라는 단어의 언어유희를 통해서 보여주었다. 한글을 읽을 수 없는 떼루에게 잔디밭에 들어오지 말라는 글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내용을 통해, 우리의 세상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인은 1부의 동시들을 통해 사람들이 가진 작은 것들에도 더 관심을 환기시키는 시들을 담았다. 더 나아가 시인은 언어유희 등을 통해 시를 읽는 즐거움을 덧대서 보여준다. 〈나는 강아지〉 동시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자를 ‘우리 강아지’라고 부르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강아지 떼루가 왜 사람에게 강아지라고 부르는지 신기해 하는 모습을 전달한다. ‘강아지’가 가진 사랑스럽고 귀여움이라는 말이 어떻게 다양하게 쓰여진 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지점이다.
2부로 가면 개미, 거미, 개똥쑥 등 우리가 평소에 주변에서 친근하게 볼 수 있는 자연의 존재들의 모습을 시로 그려낸다. 네비게이션도 없는데 복잡한 길을 가는 거미의 모습, 지금은 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전봇대의 전선에 새들이 앉아서 충전하는 비유 등을 통해, 자연을 좀더 친근하고 세밀하게 볼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도 한다.
3부의 동시들은 특히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형 등 가족의 일원이 된 떼루와 호두 등 반려견의 이야기들을 다루면서 가족 간의 따듯한 사랑을 보여준다. 이제는 3대가 같이 사는 가족도, 정원이 있는 집도, 동네 산책의 길도 쉽사리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럼에도 지금도 여전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생각할 여유와 따듯함을 선사한다.
□ 해설
장세정(동시, 동화작가)
김종경 시인은 시집 『기우뚱, 날다』(실천문학사, 2017)와 『저물어가는 지구를 굴리며』(별꽃, 2022)를 통해 변방의 것들이 지닌 민중성과 서정성을 잘 버무려 보여준 바 있다. 용인 지역의 언론인, 출판인, 시민, 시인으로서 튼실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그가 이번엔 어린이와 함께 읽을 수 있는 동시로 새로운 집을 지었다. 김종경의 호기심과 동심이 어디로 향하는지 따라가 보자.
쑥쑥 자라서
쑥이랍니다.
개똥밭에서도
무럭무럭
하룻밤만 자고 나면
소리 없이 쑥쑥
나도
얼른 쑥쑥 커서
어른이
되고 싶었어요.
이젠
개똥쑥도 개똥밭도
거기서 뛰어놀던
아이들도
사라지고 없어요. (「개똥쑥」 전문)
김종경은 어른이라면 한번 쯤 품을 법한 소망 하나를 개똥쑥에 부려놓는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개똥쑥은 빈터 나 길가, 강가 등 어디에서나 고개를 내민다. 높이가 1m에 달 할 만큼 쑥쑥 자라는 개똥쑥은 향이 강하여 주로 약으로 쓰인다. 비비면 잎에서 개똥 냄새가 난다는 둥 개똥밭에서도 잘자란다는 둥 어원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 시에서 개똥쑥은 화자가 어린 시절 품었던 약발 강한 성장에의 욕구이면서, 어른이 된 지금은 잃어버린 유년의 시간이다. 마지막 행의 “사라지고 없”음에 대한 ‘자기 인식’은 잃어버린 것에 대한 향수이면서 ‘어린이 마음’을 향해 다시금 손을 내밀고픈 반어로도 읽힌다. 비인간 존재인 개와 자연에 입을 주고 말을 걸면서 김종경 시인은 어떤 자세로 어린이 마음에 밀착해 들어가고 있을까?
〈동시통역〉 시는 의성어의 또다른 의미를 유추하면서 입말체로 읽고 즐기기에 적합한 시다. 엄마가 아기의 몸짓과 울음을 통해 아기의 욕구와 필요를 이해하고 채워주듯, 반려동물의 소리와 몸짓에 동화되어 동시통역하듯 들려주는 화자가 등장한다. 각 연마다 상황에 따라 다른 소리와 몸짓을 하는 개가 묘사되고, 8연과 9연에서는 이 모두가 결국엔 “딱 한 마 디,/몽땅 반말”인 “멍멍멍!”으로 귀결된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존재들이 상대의 말을 번역하여 그 뜻을 알게 하는 것이 통역이다. 동시통역은 상대방의 언어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바탕으로, 언어의 의도나 배경, 상황까지 파악하고 고려할 때 가능하다. 화자와 시적 대상은 삶의 경험을 나누고 마음을 잇대어 살기에 유려한 소통의 지점을 확보했다. 아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아기의 울음은 그저 소음에 불과하다. “멍멍멍!”이라는 짖음은 그 뜻을 섬세하게 잡아챌 수 있는 주체에게만 세심한 의미로 전달되는 구체적이고 생동하는 언어인 것이다. 수직적이지 않고 수평적인 ‘반말’의 관계에서 꼭 필요한 몇 마디로도 영혼의 넘나듦은 충분하다고 이 시는 말하고 있다.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존재와 진정성을 가지고 평등하게 소통하려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중략)
시골에서 올라온
택배 보따리를 풀어
다듬고 씻던 엄마
싱글벙글하더니
싱크대 구석을 가만히 쳐다본다.
-저기, 저기
할머니 오셨구나….
허리 굽은 몸을
지팡이도 없이 잔뜩 웅크린 채
물 빠진 싱크대를
한없이 기어, 기어서
올라가는 달팽이 한 마리. (「달팽이 할머니」 전문)
시골에서 온 할머니의 택배 보따리에서 나온 달팽이를 통해 엄마는 할머니를 본다. 느릿느릿한 걸음, 웅크린 몸, 굽 은 등과 같은 외적 유사성에서 기인한 발상 같지만, 실은 택 배를 보낸 할머니와 받는 엄마의 그리움이 만나 발현된 내적 동기의 결과물이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이러한 몸 바꾸기는 애초에 서로가 하나였다는 강한 연결감에서 온다. 세상은 나 이와 종과 성별과 공간으로 우리를 분리하려 들지만, 처음부 터 모든 생명은 하나라는 인식이야말로 우리를 풍요롭고 자 기답게 한다. 분리와 위계를 의식하지 않는 상태의 온전한 하나됨이야 말로 어린이가 자연과 삶을 대하는 태초의 자세가 아니었을까?
그러므로 비인간을 동시의 주체로 내세울 때 경계해야 할 것은 인간 중심적인 근대적 휴머니즘의 유산들임을 기억 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 시 「파랑새」에서 하양, 검정, 노랑으로 나뉜 다양한 색깔이 실은 “파랑은/ 파랑새와 내 마음”이라 고 고백하기 위한 탐색의 과정이었길, 앞으로 쏟아낼 김종경 동시의 활발한 질문이길 소망해본다. 그 질문들에 답하며 개 똥밭에서 개똥쑥과 하나 되어 놀던 아이가 돌아와 동시라는 놀이터에서 뭇 생명들과 기꺼이 하나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