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 작가의 등단작이자 첫 소설집의 표제작인 「길목의 무늬」는 전라남도 목포의 “가난을 머리에 이고 지고 사는 동네” ‘다순구미’가 배경이다. 현재 재개발 지역으로 규정된 폐허의 공간이다. 이곳에서 태어난 화자 역시 버려진 아이다. 그러나 김성훈이 소설이 버려진 아이의 비극적 삶만을 언급하진 않는다. 분명 ‘파시’에서 몸을 팔던 어머니의 직업과 실종은 화자에게 주홍글씨이자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다. 그러나 그는 “우짜든지 너랑 나는 잘 살아야 해.”라고 말한 아버지, “휴학, 복학, 취업, 명예퇴직, 재입학의 단어가 빚어낸 내 세월을 흉금 없이” 털어놓을 수 있었던 달순 엄마가 있었기에 외로움과 자기비하를 이겨낼 수 있었다. 김성훈 소설가는 다순구미와 같은 버려진 장소와 얽힌 비극적 서사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삶의 지층을 쌓는” 과정으로 이야기를 확장한다.
여수를 배경으로 쓰인 「정오의 끝자리, 빛」이나 마산을 배경으로 쓴 「홍콩빠 이모」 또한 버려진 아이들의 서사와 한국 사회의 국가 폭력에 대한 혐오를 생산한 대표 사례들이다. 「정오의 끝자리, 빛」에서는 ‘빨갱이의 자식’이라는 꼬리표로부터 평생 자유롭지 못했던 10·19여순사건의 희생자 이야기를 담았다. 「홍콩빠 이모」는 이승만 독재정권이 저지른 부정선거에 항거한 마산3·15 의거와 관련된 이야기다. 소설이 생략한 홍콩빠 이모 김명자 씨의 아들은 훗날 부마항쟁과 5·18민주화운동으로 기록된 한국현대사의 어두운 비극으로 귀결된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에서 씁쓸할 수밖에 없다.
“불 끄입시더. 우리! 아, 저…우리 아, 얼굴 별빛에도 비추면 안 되입니더. 불 끄입시더. 이모들이요. 이 야, 어린 것 맨상부터 가리입시더. 퍼뜩 안 하고 뭐하십니꺼. 불 꺼!”
김명자는 기운을 뻗쳐 소리쳤다. 홍콩빠의 불빛이 하나, 둘 소등됐다. 이윽고 마산 시내 야경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홍콩빠 거리가 칠흑처럼 깜깜해졌다. 비에 젖은 사람들의 수선스러운 움직임이 육손이를 향해 동심원을 그리며 모여들었다. 하늘에서 구름에 가린 조약돌 같은 별이 바다에 떨어져 파문을 일으키는 것처럼 사람들은 스크럼을 짰다.
-「홍콩빠 이모」, 101쪽
그러나 소설의 막바지에서 보이는 홍콩빠 사람들의 스크럼이라는 연대, 버려진 아이를 보호하는 일을 자기 삶의 “사역의 완성”이라 여겼던 김종수의 의부모, 또한 달순 엄마의 무조건적인 환대에서 우리는 시대의 어둠과 좌절감을 관통하는 강력한 치유의 힘을 볼 수 있다. 세월호 사건의 생존 학생 및 교사들이 겪는 트라우마와 이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는 심리상담사의 이야기인 「곁」 또한 타인의 상처와 주체의 상처가 서로 마주하는 것이 치유의 시작점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렇듯 버려진 아이들의 구조 요청에 기꺼이 응답하는 환대와 연대의 힘, 국가 폭력 이후 유예되고 미완된 애도 작업이 바로 김성훈의 소설 쓰기다.
김성훈은 1984년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났다.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목포대학교 국어교육대학원(석사)을 졸업하고 현재 전남대학교 문화재학협동과정(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2022년 목포문학상 남도작가상을 수상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현재 해남군사회적공동체지원센터에서 주민자치 업무를 맡으며 여전히 소설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