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밖에서 본’ 지금의 노동운동
저자가 의도한 이 책의 성격은 ‘노동 밖에서 본’ 노동의 역사이다. 노동운동도 엄연히 역사학의 한 부분이건만, 노동운동사 연구자 대부분은 역사학자가 아니라 노동운동가 출신들이다. 그 당사자성을 극복하는 것이 이 책의 과제이자 한계였다. 방법은 당사자들을 만나는 것이었고, 풍부한 ‘구술’은 심각하게 부족한 사료의 빈틈을 메우고 이어 주는 또 하나가 역사가 되었다. “1970년 전태일의 죽음은 그로부터 17년 후인 1987년 전국적으로 수백만 노동자가 외친 ‘노동자 인간 선언’으로 살아났던 한국의 노동운동은, 왜 오늘날 시민들에게 무시받는 상황이 되었나? 어쩌다가 총파업을 하든 말든,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참여하든 말든, 사람들이 별 신경 쓰지 않는 세력이 되었나?”
짐승의 시간을 헤쳐나온 그들을 위해
도대체 진실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하기나 할까? 전문 분야도 아닌 주제를 붙들고, 검증해 줄 사료가 없어 노동운동 당사자들의 구술로 확인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에 4년간 매달린 끝에 저자가 던진 의문이다. 구술을 듣고자 어렵사리 만난 ‘당사자들’은 여전히 아파하고 힘들어했다. 박정희와 전두환을 거치며 겪어야 했던 짐승의 시간, 저항의 당위성만 있을 뿐 어느 누구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오직 맞서기만 했던 그 시간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길을 가기 위해 버릴 수밖에 없었던 관계들, 그 과정 속에서 주고받은 상처들 … 그들 덕분에 민주화가 이루어졌고, 사회가 바뀌었고, 누구든 노조를 만들 수 있고, 노동자라고 위축당하고 빼앗기기만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었다. 이 책은 특히 부산이라는 지역에서 그 과정을 수행한 이들의 행적을 거침없이 낱낱이 좇는다. 그러면서 노동 밖에 있던 학자로서 노동 안에서 일어난 역사에 집요한 의문을 품는다. 그 끝없는 질주와 질문의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