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보리밥” 정말 맛있습니다!
청보리가 한창인 4~5월이 되면 오래된 친구와 맛난 밥을 먹으러 가던 한정식집이 있었습니다. 엄나물, 가죽나물, 두릅 등 알싸한 봄 냄새를 머금은 나물에 직접 만든 천연 조미료가 버무려진 밥상은 포만감과 행복함을 주는 맛깔난 한상이었습니다. 우린 늘 그곳에서 밥을 먹고 1년을 잘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곤 했습니다. 한정식집이 없어지고 봄이면 여전히 청보리가 넘실대는 그곳에는 윤혜신 선생님이 가꾸는 너른 정원이 계절마다 다른 풍경으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책방을 열고 인사를 나누게 되어 윤혜신 선생님의 계절밥상에 초대된 적이 있습니다. 손수 차리신 밥상은 제철 재료로 정성껏 만든 요리와 소스 하나에도 이야기가 담겨있어 맛과 풍미가 풍성했고 덕분에 임금님 밥상 부럽지 않은 특별한 음식을 맛보았습니다. 음식을 하고 손님들을 초대해 먹이는 선생님의 모습은 직업 요리사이기보다 음식을 너무나 사랑해서 요리하지 않곤 배길 수 없는 사람임을 느끼게 하는 진짜 요리인이었습니다.
5년 전 책방에서 진행한 독립출판 수업에서 보았던 선생님의 “밥 이야기”가 지금도 선명히 기억납니다. 밤새 색종이를 오려서 밥그릇을 만들고 그 위에 색연필로 보리밥, 조밥, 수수밥, 쌀밥을 그려 넣은 더미북이었습니다. 책 소개를 하시며 “나는 음식 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게 밥이에요.” 하시던 말씀에 오랫동안 “밥 이야기”가 실물 그림책이 되어 나오는 날을 기대했습니다.
책방지기보다 책 이야기를 더 많이 알고 있는 보람 씨의 정성 가득한 바느질과 윤혜신 선생님의 그리움이 담긴 “꽁보리밥” 이야기가 사랑스러운 공출판사를 만나 따뜻하고 멋진 그림책이 되었네요. 그 여정에 함께 할 수 있어 “책방 하길 잘했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감사와 축하를 전합니다. 많은 분이 건강하고 따뜻한 “꽁보리밥”을 맛보시길 기대합니다.
“꽁보리밥” 정말 맛있습니다!
지은숙 (책방 오래된 미래)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처럼 다양한 먹거리가 많지 않던 시절에는 자연에서 얻은 귀한 재료들로 따뜻한
밥 한 끼를 차려 먹었습니다. 계절별로 나오는 곡물과 식재료는 가족의 건강을 챙기는 중요한 자원이었습니다. 그때의 정성과 사랑이 담긴 밥 한 그릇은 우리에게 자연의 소중함과 가족의 따뜻함을 일깨워 줍니다. 지금도 그 맛을 잊지 않고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추억을 되짚어 ‘밥, 맛이야!’ 그림책 첫 번째 《꽁보리밥》입니다.
어릴 때 할머니를 따라 장에 갔던 기억은 항상 즐거운 놀이였습니다. 평소에 볼 수 없는 신기하고 재미난 것들이 많았거든요. 쌀이나 그 밖의 곡식을 파는 싸전에는 어린 눈에 구슬 같기도 하고 보석 같아 보였습니다. 이날 할머니는 통보리를 한 자루 사셨습니다. 분명히 사셨는데 팔았다고 하십니다. 어린 귀가 이해하기 힘든 말이 많습니다. 통보리는 깨끗이 씻어서 한 번 삶은 후에 밥을 합니다. 그때 나는 밥 냄새를 잊지 못합니다. 구수한 냄새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납니다. 밥을 하는 동안 할머니는 감자, 호박, 버섯 맛있는 야채를 송송 썰어 멸치와 된장을 넣은 강된장을 보글보글 끓이십니다. 보리밥을 한 숟가락 가득 퍼서 한 입 먹으면 통통 터지는 맛에 저절로 웃음이 납니다. 강된장과 꽁보리밥의 구수함은 절대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맛입니다.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수놓은 이보람 작가의 그림으로 정겹고 따뜻한 이야기가 잘 표현되었습니다. 다양한 천을 함께 사용함으로써 입체감을 주고 재미난 구성으로 귀여움이 장면마다 살아 있습니다.
음식은 단순한 맛을 넘어, 기억의 조각들을 담아냅니다. 그 특별한 순간들이 맛과 향에 스며들어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기 때문입니다. 아이, 어른 구분 없이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우리 고유의 음식과 바느질이 잘 어우러진 그림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