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사우루스인 디노, 속씨식물 플로라, 유시류 버기,
그리고 포유류인 모로의 1억 3000만 년 전의 생존기
디노와 플로라는 서로를 사랑하지만 각자의 삶에, 주어진 운명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디노는 종족의 마지막 후예였고, 플로라는 종족의 시작을 알리는 속씨식물이었다. 디노는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고 플로라는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디노는 플로라가 디노를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그저 담담히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플로라를 원망할 수도, 자신의 처지를 비난할 수도 없었다. 모로에게 얄팍한 기회주의자라고 정의되는 버기는 스스로를 ‘영리한 사업가’라 칭한다. 플로라와 자신이 서로 가진 것을 나누면 각자가 원하는 사업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그 때문에 디노와 플로라가 맺어질 수 없는 현실이 더욱 부각되지만 버기가 나쁜 인물인 것은 아니다. 곤충류인 버기 또한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여 대자연의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선택을 한 것뿐이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 모로는 공룡시대에는 그리 주목받는 종이 아니었다. 하지만 중생대 백악기 말, ‘5차 대멸종’ 속에서 살아남으로써 진화에 속도가 붙었고, 아주 긴 시간이 흐른 뒤에는 지구의 주인공이 되었다. 디노처럼 거대하지도 않고 플로라처럼 수많은 동족을 만들 수도 없고 버기처럼 날지도 못하지만 오래도록 살아남아 1억 3000천 번이나 봄을 맞이하며 플로라가 피고 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들이 함께 있었던 쥐라기 시대는 생존과 멸종이 몇 번이나 거듭된, 결코 로맨틱하다고 표현할 수 없는 시기였다. 그러나 디노, 플로라, 버기, 모로는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내었고 각자의 방법으로 사라지거나 생존하기를 택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들은 가늠할 수조차 없을 만큼 오랜 시간 전, 지구상에 존재했던 종들의 생을 가만히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도서는 제8회 경기 히든작가 선정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