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에서 관찰되는 음악의 동시대성
‘악보들’의 출발점은 지금-여기의 음악이다. 현재 우리가 마주한 음악이 가진 동시대성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떤 모습인가. 예컨대 “동시대 음악 실험에서 ‘멜로디’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선이 사라지고, ‘음향’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덩어리가 그 자리를 대체한 현상”은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악보들’은 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서양 음악사에서 지속적으로 마주치는 두 경향의 운동, 즉 음악의 조건을 극복하려는 움직임과, 반대로 먼 곳으로 향하는 운동을 우리 신체와 맞닿은 ‘노래’라는 틀로 바라본다. “흥미롭게도 이 두 가지 운동성은 서로 충돌하면서도 협력한다. 때때로 간단히 분리해 내기 어려운 상태로 뒤얽힌다. 하지만 서양 음악사의 흐름에서 특정 경향이 더 강하게 또는 독특하게 운동하는 순간들이 도래했고, ‘악보들’은 그 순간들을 포착”한다. 시간에 따라 변화하며 움직이는 음악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그 흔적이 구체적으로 담긴 악보를 통해 긴 여정을 이어 간다.
소나타와 알레그로 사이
로베르트 슈만이 프란츠 리스트에게 피아노 독주곡 「판타지」를 헌정하고 14년 뒤, 리스트는 그에 화답하듯 「소나타」 하나를 슈만에게 헌정한다. ‘교향시’라는 장르를 창시한 리스트에 어울리지 않게 ‘B단조의 소나타’라는 간결한 이름이 붙은 곡이었다. 단 하나의 악장으로 이뤄진, 한 번의 멈춤도 없이 한 호흡으로 30분가량 연주해야 하는 이 곡은 발표된 이래 수많은 해석을 낳았다.
곡의 진행을 이해할 수 없었던 당시 사람들은 리스트의 다른 작품을 해석할 때 그랬던 것처럼 음악 외적인 것에서 음악의 논리를 찾았다. “이해할 수 없는 진행을 단번에 ‘말이 되는’ 진행으로 만들어” 줄 서사가 필요했다. 이 책의 제목에 포함된 신곡, 파우스트, 에덴동산, 괴테, 그레첸, 메피스토펠레스, 실낙원 등은 바로 사람들이 곡의 바탕이 된 ‘소나타-알레그로’ 형식 안에 리스트가 넣었다고 여긴 것들이다.
이 곡의 초연을 들은 음악미학자 한슬리크는 “이 곡을 듣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말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만약 그 곡을 이루는 질서가 한슬리크 자신이 말했던 ‘음으로 움직이는 움직임의 형식들’이라면, 그것이 음악 너머를 상상하게 할 정도로 너무나 섬세하고 정교했던 것이라면, 그것이 소나타를 극단까지 끌고 간 결과라면, 우리는 이 곡을 둘러싼 모든 이야기를 멈추고, 다시 「소나타」를 찬찬히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