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라는 땅에 여자로 태어나 일평생을 살아간 사람들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아내로 이름을 남기던 조선 시대 여성 가운데, 묘지명에 자기 이름을 남긴 이가 있다. 바로 조선 시대 문장가 김창협의 딸 ‘김운’이다. 김운의 생전 소망은 ‘만약 남자로 태어날 수 있다면, 깊은 산속에 집을 짓고 수백 권의 책을 쌓아 둔 채 그 속에서 조용히 늙어 가고 싶다’고 했다. 김운은 열한 살 나이에 아버지와 경전을 읽으며 토론을 할 만큼 총명함이 있었지만, 혼인한 뒤로는 그 총명함과 지식욕을 감추고 ‘여자로서 해야 할 일’만 충실하게 했다고 한다. 그런 김운은 남편에게 종종 ‘자신이 여자여서 세상에 드러낼 공덕이 없으니 차라리 일찍 죽어 무덤에 아버지의 글을 남기고 싶다’는 말을 건넸다. 그 바람대로 김운은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허씨오문장’이라고 불렸던 허난설헌은, 이 다섯 명 가운데 시재가 가장 뛰어났다고 한다. 허난설헌보다 열두 살 위인 둘째 오라버니 허봉은 누이 난설헌에게 두보의 시집을 선물하며 동생의 재능이 두보를 이을 만하다 칭찬했다. 이런 허난설헌은 평생 세 가지를 한으로 생각했다. ‘조선이라는 좁은 땅’에 ‘여자로 태어나’ ‘김성립의 아내가 된 것’이라 한다. 정말 그런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허난설헌은 죽기 전에 평생 쓴 시를 다 태워 버리라는 유언을 남겼고, 유언에 따라 그의 시는 모두 불태워졌다.
《도대체 여자 일이 무엇이관데?》는 조선이라는 땅에 여자로 태어나 일평생을 살아간 여성들의 삶에 주목했다. 신사임당과 허난설헌, 황진이처럼 모두가 다 아는 여성들은 물론, 조선 시대 여성 유학자 윤지당과 정일당, 임진왜란에 일본군의 첩이 되어 나라를 구했던 기생 계월향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 여성의 삶과 이야기를 책 한 권에 담았다.
조선 시대 여성의 삶과 옛글을 새롭게 재조명하며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여자 일’에 질문을 던진다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했던 글쓴이 신혜경은 천한 사람과 귀한 사람이 나뉘어 있던 시절, 귀한 사람의 역사가 아닌 약하고 이름 없는 이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더 주목했다. 억압받고 차별당하던 사람들이 평등한 세상을 만들려고 싸우던 이야기가 저자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이름난 이들의 역사만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지만, 역사에 이름 한 줄 남기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도 모두 이 땅에서 살았다. 이 땅에 살았다는 흔적을 뚜렷하게 남기지 못했더라도 그 사람들이 만든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그렇다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또한 이 세상을 만들어 가는 사람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우리는 역사에서 조명받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 할 것이다.
1부 ‘여자 일에 질문을 던진 여성들’에서는 기생부터 양반집 부인까지, 후대에 이름을 널리 알린 인물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까지, 모두 열다섯 명의 삶을 자세히 살펴본다. 2부 ‘옛글로 알아보는 조선 시대 여성의 삶’에서는 전래동화나 옛이야기로 전해져 온 이야기 속 여성 주인공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읽어 본다. 야담과 전설은 누가 어떤 의도로 이야기를 만들고 전했을까? 이야기를 만든 이들이 꼭 전해야 하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야기를 쓰고 전하는 사람의 시각이 아닌, 그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청자의 입장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이야기의 속살을 비틀어 본다. 저자 신혜경은 담백하면서도 진솔한 문장으로, 어떠한 이념도 규율도 가로막지 못했던, 살아 숨쉬는 조선 여성의 모습을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 준다.
유교와 예법으로 조선이라는 시대는 여성을 여성의 일에만 묶어 두려 했지만, 그 시대에도 ‘사람의 일’을 꿈꾸고 욕망하며 살아간 여성들이 있다. 이름 높은 여성들도, 우리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 없는 여성들도 저마다 자기만의 삶을 살았다. 다만 알려지지 않았을 뿐.